본문 바로가기

말씀묵상/말씀 묵상-2020년

레위기 7-9장 묵상

화목제를 드린 이후에 음식은 그 날 안에 다 먹어야 한다. 생각해 보자 동물 한 마리의 내장을 제사로 드리고 나서 전체를 먹으려면 몇 명이나 필요할까? 최소한 십수명은 모여야 가능할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화목제를 이웃에게 나누고,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통로로 사용하도록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최소한 자신의 친인척들까지는 불러 모아야 그 음식을 다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하루를 강압적으로 지키게 하시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빠져나갈 통로를 하루 정도 내주신다. 하지만 이틀은 절대 안된다고 하신다. 이는 고기를 쟁여놓고 본인이 다 먹지 말고 반드시 주위에 나눔을 실천하라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 있는 말씀을 읽으면서 당시 제사를 위해서 소, 양, 염소를 내놓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까웠을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십일조를 놓고 왜 그렇게 논란이 많겠는가? 사실 수입이 적은 사람들은 굳이 그에 대해서 논란을 만들 필요도 없다. 사람들은 수입이 많을수록 십일조를 내는 것이 망설여지고, 그것을 꼭 내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란을 만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를 드리라는 것은 그와 같은 맥락에 서 있다. 내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 하나님을 만날 다른 경로가 없기 때문에 제사를 종류별로 지키고 행위를 통해서, 현실의 실천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제사를 다섯 가지로 분류해서 명하셨을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그 부분은 조금 다르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성경이 있고, 신앙서적과 신학서적도 엄청 많이 나와 있다.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갈 기회가 많다. 아니, 사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책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와 같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시간이 돈이지 않나?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께 내놓는 것은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을 포기하고 하나님 앞에 내놓는 것이기 때문에 그 역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헌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화목제에서 볼 수 있듯이 제사는 단순히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 관계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과정을 통해 공동체가 형성되고 결속되었을 것이다. 제사 후의 나눔을 통해서 말이다. 헌금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는 물질이 내 것이 아님에 대한 고백이지만, 공동체 안에서는 공동체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쩌면 헌금은 모아두고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들어오는 족족 이웃을 위해서 써야 하는 것은 아닐까? 화목제의 제물을 하나님께서 그들이 나눠 먹게 하도록 했던 것처럼 말이다. 어떤 이들은 '그게 같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재산을, 직접 먹거나 농사 짓거나 번식하는데 쓸 수 있는 재산을 그렇게 제사로 드리고 다른 사람들과 곧바로 나눠 먹어야 하는 현실이 처음에 쉬웠을까? 그 원리는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 크고 좋은 일을 위해? 우리가 생각하는 크고 좋은 일이 하나님 안에서도 더 크고 좋은 일인가? 아니면 우리가 생각하는 더 크고 좋은 일을 우리가 하고 싶어서 그러하는 것인가? 우리는 스스로에게 조금 더 솔직할 필요가 있다. 

 

'말씀묵상 > 말씀 묵상-2020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위기 13-14장 말씀 묵상  (0) 2020.02.08
레위기 10-12장 묵상  (0) 2020.02.07
레위기 4-6장 묵상  (0) 2020.02.05
레위기 1-3장 묵상  (0) 2020.02.04
출애굽기 37-40장 묵상  (0) 2020.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