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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의 일상생활

프리랜서에게 사람이란?

연락이 조금 늦어지던, 기다렸던 연락을 줬던 일감에 대한 연락이 왔다. 그 회사를 방문해서 계약조건에 대한 논의를 했고, 원래 금전적인 보상이 1순위가 아니었기에 아무런 무리 없이 얘기가 수월하게 오갔다. 그리고 내가 할 업무에 대한 브리핑을 듣는데 폴더에 내 이름이 이미 있었다.

나: 뭐야? 나 이미 업무 할당되어 있던 거야?

A: 그럼요. 뭐라고 생각했어요?

나: 난 계약이 안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A: 무슨 소리예요. 00 없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

그렇다. A는 이미 내게 일을 주기로 했지만, 조건이 어떻게 맞춰질 수 있을지를 몰라 확답을 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고마웠다. 나를 이렇게까지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프리랜서에게 이렇게까지 본인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큼 고마운 일은 없다. 심지어 이번 프로젝트가 잘 끝나고 나면 다른 일도 같이 할 수도 있겠단 얘기를 내부에서 했단 얘기에 감동할 뻔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프리랜서에게 사람은 전부다. 이는 프리랜서에게 일은 대부분 사람을 통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크몽이나 프리랜서를 구하는 루트를 통해서 일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그런 일들은 일회성에 불과하다. 의미 있는 일들은 대부분 지인을 통해, 혹은 지인의 소개로 들어온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도 7할은 그렇게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어디 프리랜서만 그렇겠나? 사람들은 이직을 헤드헌터나 경력직 공고를 통해서 주로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대기업이나 정부가 관여된 이직에서나 그렇다. 작은 회사로의 이직은 보통 지인들을 통해서 이뤄진다. 작은 회사를 다녀보면 알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작은 회사는 한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마어마하게 크고 주니어라고 해도 한 사람이 잘못 들어오면 회사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맥으로 이직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만약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5년 전만 해도) 구글에서 내부 구성원이 추천을 해서 한 명이 채용되면, 그 사람을 추천한 사람에게 추천 보너스를 줬다는 것을 안다면 뭐라고 생각할까? 그렇게 추천을 받은 사람이 내부적으로 우선적으로 고려대상이 된다는 것을 안다면?

일은, 특히 프리랜서로 해보면 알겠지만 단순히 기능과 실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 사람과의 합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서로의 성향, 경향성 등이 맞지 않으면 그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일이 잘 진행되지 않는다. 그리고 서류를 보고, 면접을 아무리 봐도 그것이 그 사람과 함께 일해보는 만큼 그 사람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게 해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본인이 개인적으로 일도 해봤고 사적으로도 아는 사람을 누군가를 추천한다면 그게 서류와 면접 정도만 보고 같이 일하기로 결정하는 것보다 안전하지 않을까?

프리랜서에게 사람은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그런데 사람과의 관계는 인위적으로, 억지로, 노력을 통해 형성하고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노력은 오히려 관계를 해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고 하거나 억지로 잘 해주려고 하면, 상대가 바보가 아니기에 그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게 되어 있다. 그런 관계는 자연스럽게, 내 모습과 실력을 보여주면서 형성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서로의 합이 맞고 좋았을 때 그 사람에게서 또 다른 일이 들어온다.

풀타임에서 파트타임 프리랜서가 되었을 때, 즉 회사원으로서의 신분과 프리랜서로 겸업을 하고 있을 때 인턴을 하는 친구가 '프리랜서시죠?'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나를 처음 봤을 때.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니 오늘 처음 온 것 같은데 너무 편해 보여서 그렇게 생각했다고 했다. 물론,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회사에서 과거에 파트타임으로 이미 9개월 간 일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친구가 본 것처럼 능글맞고 자연스러운 것은 프리랜서로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근육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들은 능력과 기술만 있으면 프리랜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프리랜서의 일은 사람을 통해서 들어온다. 그래서 사실 프리랜서에겐 능력과 기술만큼이나 사람이, 관계가 중요하다. 관계를 잘 형성하는 것이 프리랜서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