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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의 일상생활

마지막 연주가 아니길 기도해야지

아버지께서는 고등학교 시절에 하셨던 밴드반 OB연주를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하고 계신다. 할아버지는 트롬본을 부셨고, 아버지는 클라리넷, 나는 트럼펫을 하지만 사실 아버지의 그 OB연주에 단 한 번도 같이 서 본 적이 없는 게 항상 마음이 편치 않다. 내가 악기를 워낙 오랫동안 놓고 있기도 하고, 사실 거기 계신 분들은 내 상황들을 대충은 알고 계시다 보니 내 상황이 나아지기 전에, 그분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부끄러워하시지 않을 수 있는 시점에 같이 연주를 서고 싶었는데 그 시기가 아직도 오지 못했다.

그런 아버지께서 내년에는 반드시 시골로 내려가시겠다며 요즘에는 귀농 교육을 받고 계신다. 난 아버지께서 시골에 가서 훨씬 행복하게 살 수 있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대기업에 다니시다 정년퇴직하고 나서 4년 정도 의정부 외곽에 있는 마당 있는 집에서 사실 때 아버지께서 가장 행복해 보이셨고, 지금도 사는 단지 내 흙에 꽃을 심으실 정도로 몸을 움직이고 흙을 만지는 걸 좋아하시는 것을 봐왔기에 아는 사실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OB연주회는 서기 힘드실 것이다. 연주회를 조금 큰 공연장에서 할 때는 갔지만 어느 순간부터 비슷한 레퍼토리에 듣고 있는 게 큰 감흥이 없는 어르신들의 연주를 매년 굳이 가지 않게 되었는데, 어머니께서 올해는 마지막일 수도 있다며 내게 가자고 하신 것도 그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은 그 나이면 며느리, 손주까지 오는데 너희는 대체 뭐냐. 작년에 나 혼자 갔는데 민망해 죽는 줄 알았다'라고 말씀하신 것도 그런 말씀을 하시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런데 일이 밀려 있었다. 오늘 오전 8시까지 납품해야 하는 일이 있었고, 왕복하는 시간과 연주 시간을 감안하면 연주에 가면 새벽까지 작업을 해야 할 상황이었고, 오늘은 또 오늘대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는 상황. 동생과 어머니가 출발하기 직전까지 고민을 했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서 집에 혼자 남아 작업을 했다. 아버지께 문자라도 남길까 하다가 '시골에 계셔도 격주로 올라오셔서 연습하시다 서실 수도 있는 건데 뭐'라는 생각이 들어 말았다. 그리고 내년 또는 후년에라도 한 번 아버지와 같이 무대에 서고 싶단 생각을 했다. 내 상황도 그럴 수 있는 상황이면 얼마나 좋을까. 

또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몸이 너무 안 좋은 상태여서 어제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고 싶지 않더라. 회사에서 다시 나온 후에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거의 매일 10시 넘어서 일하는 삶을 반복하고 있다. 물론 중간에 쉬기도 하고, 넷플릭스에서 빅뱅이론을 미친 듯이 정주행 하고도 있지만 숨을 쉬기 위해 하루를 온전히 날리는 날은 단 하루도 없는 상황. 몸이 남아날 리가 없지 않나? 

지난주에 두드려 맞은 것처럼 몸살이 나는데 그날까지 마감이 있어서 내가 대학원에 다닐 때 다녔던 병원에 갔고,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니 좀 낫더라. 그리고 살을 빼면 좀 낫지 않을까 싶어서 마침 점심을 주기적으로 같이 먹는 회사동기가 본인이 아는 한약국 다이어트 한약이 잘 듣는다고 하길래 그 약까지 지었다. 외모적으로도 살을 빼면 긍정적인 변화가 있겠지만, 내가 현실적으로 힘들어서 한 선택이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걸어 나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내가 하는 일들에서 배우는 게 있고, 남는 게 있기 때문이다.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안쓰러워하시지만, 지금은 쌓는 과정이고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내가 사용하는 공유사무실로 나오면서 '좀 쌓이고 내 몸값이 올라가면서 단가가 올라가면 나아지겠지 뭐'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에서 곧 출시될 시계를 쇼룸에 가서 볼 테다. 올해 안에는 소멸하는 마일리지를 써서 제주도에 다녀올 거고, 함께 작업하고 있는 드라마가 다 종영되고 나면 다른 대륙(?)으로 여행도 2주 정도 가고... 그러면 좀 숨을 쉴 수 있지 않을까. 

일단 다음주 주말 정도부터... 백만년만에 다시 사진기를 좀 꺼내고, 몇 달 전에 만든 국내 여행 매거진에 글을 올릴 수 있는 발걸음을 좀 할 수 있음 좋겠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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