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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말씀 묵상-2020년

레위기 21-23장 말씀 묵상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현재 관점에서 조금 불편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 특히 21장에서 거침 없이 쓰이는 '과부나 이혼 당한 여자나 창녀 짓을 하는 더러운 여인을 취하지 말고 ....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와 같은 부분이나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그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한 것들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맹인, 다리 저는 자, 신체 중 일부가 부러진 자들을 하나님께 나오지 못하게 하는 내용도 그럴 수 있다. 그리고 먹는 음식들에 대해서도 더러운 것을 가져오지 말라고 하는 것이 불편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에 대해서 '흠 없고 깨끗한' 것이 예수님을 상징적으로 의미한다는 해석이 있다. 분명 그런 면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신학'적인 측면이 아니라 일반 성도인 내 입장에서는 그런 상징적인 의미를 따지고 예수님께서는 흠이 없는 분이셨음을 이때부터 예비한 것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크게 다가오지는 않는게 사실이다.

물론, 신학적이로는 그런 면이 있을 것이고 성경을 관통하는 이야기로, 그리고 유대교에서 부인하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사실을 주장하기 위해서 그런 논거는 분명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매일 묵상의 취지에 맞게 묵상하려면 그게 지금 우리의 삶에 어떻게 와 닿는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가 더 문제가 된다. 이는 저렇게 규례로, 율법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지금도 지켜야 하는 지에 대해서 항상 논란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선 개인적으로는 그 당시에 이런 기준이 주어진 것은 이미 그 시대에 그런 관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게 유지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현재의 관점에서 '아니, 어떻게 그렇게 차별적인 것을!'이라고 하지만, 이전 글에서도 설명했듯이 하나님은 그 시대의 사회,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수단'을 사용하신다. 예를 들면 지금 우리 사회에 갑자기 '일처다부제를 도입한다'고 해보자. 일부다처제나. 반응이 어떻게 올까? 

하나님은 인간 안에 있는 죄성과 한계를 아셨기 때문에 그것을 급격하게 바꾸기 보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움직이셨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따라서 당시에 '흠 없고 깨끗하다'고 묘사된 것은 그들의 기준에 맞춰서 그렇게 일단 유지는 하되, 그 과정에서 차별을 하거나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하고, 그 문화 안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유도(?)하도록 질서가 정해졌다고 보는게 맞다.

그리고 계속 쓰는 얘기지만, 이 당시에는 사회라는 것 자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란 것을 우리는 항상 염두에 두고, 여기에서 원칙으로 세워진 내용들은 그런 원칙들 조차 그 당시에 없는 상황이란 것을 기억하고 가야 한다. 그 맥락을 빼고 해석하려고 들면 모든게 엉키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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