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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연애

20여년전에 좋아하던 친구가 생각났다

왜 오늘일까?

초등학교 시절 좋아했던 사람들 생각이 유난히 많이 났다. 내가 좋아했었던 그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너무나도 흔한 이름이기에 내가 찾을 수 없을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SNS에 이름을 쳐보고 뒤적거리다, 결국 머나먼 옛날의 기억들을 찾아 싸이월드까지 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었던, 이미 연락이 안 된 지 오래된... 친구라고 하기에도 어색한 이들의 이름을 SNS에서 뒤적거렸다. 그렇게 뒤적이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마치 그때로 돌아간 느낌이 들더라.

사랑이었을까?

머리가 커진 이후에 항상 그때, 초등학생이었을 때와 청소년기에 누군가를 좋아했던 게 무슨 사랑이냐며, 그땐 뭘 몰랐고 그저 안에 있는 감정에만 충실했던 것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그때 사랑이 뭔지 어떻게 알았겠냐며 말이다. 

그런데 처음 그렇게 말한지도 몇 년이 지나고 나니, 역설적으로 그때 내가 했던 것이야 말로 사랑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땐 정말로 묻고 따지지도 않고 상대를 좋아했었다. 돌아보면 그때는 상대의 외모도 한 때 그랬던 것처럼 어디는 어떻게, 어디는 저렇다는 식의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상대가 마냥 이뻐 보였을 뿐이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 풋사랑이라며 그때의 감정을 폄하했지만, 그 때야 말로 진짜로 사랑을 하고 있었던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변하며 사랑도 변하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내가 변하면서 내 사랑도 변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장래희망으로 부모님의 얘기를 듣고 대통령, 과학자, 변호사 같은 그럴듯한 것들을 적어낼 때 나는 너무 당당하게 '경비원'이라고 써서 선생님과 부모님을 당황시켰었다. 그때 내가 보는 세계에서는 주차장에서 야구를 하면 우리를 쫓아내던 경비원 아저씨가 제일 힘이 세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참 그렇게 단순하고 순진했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설득에도 넘어가지 않고 '경비원'을 장래희망으로 꿋꿋이 써냈으니 말이다.

그때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모습도 그때의 내 모습과 참 많이 닮아있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누군가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겪게 되는 과정은 어쩌면 우리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돈을 좋아하면 돈이 기준이 되고, 남들 눈이 중요하면 겉으로 보이는 것이 중요하게 되고, 신분 상승의 욕구가 있으면 또 그걸 기준으로 선택을 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특히 결혼상대를 찾을 때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장기적으로 봤을 때 평생을 같이 갈 사람을 선택하는 과정은 결국 내 사고체계와 가치관을 반영하게 되어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니 나도 참 많이 변했음을 깨닫는다. 과연 누군가를 정말 순수하게 좋아했던 것처럼,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를 좋아했던 그때처럼 누군가를, 그 사람을 존재 자체만을 이유로 사랑하게 될 수 있을까? 여전히 사람을 제일 중요시하고 나이브할 정도로 상대의 집안, 재력 등에 대해서는 계산할 줄 모르지만 상대를 신뢰하는데 이전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을 보면, 그 역시 내 모습인 것 같아서 스스로에게 안쓰러움을 느낀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때의 철없었던 그 풋사랑이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