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땅을 떠나 지금까지 생존에는 아무 문제 없이 살았다. 하지만 그들은 시간이 지나자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싶어했고,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것을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마 애굽에서 종살이를 할 때는 그 상황만 벗어나도 감사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변하자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 손에 쥐지 못한게 보이기 시작했고 그걸 갖고 싶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고기를 먹고 싶어했다. 그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고, 모세는 하나님을 원망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님에도 그들을 달랠 수 있는 것을 풍족하게 주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물이 자신에게 대들어도 분노하시지 않고 그들을 달래주셨다. 하나님은 이처럼 정말 필요할 때는 개입하시는 분이다. 그렇게, 그들은 그들의 필요와 욕구도 하나님 덕분에 충족시킬 수 있었다.
하나님도 아셨을 것이다. 그것이 충족되면, 그 후에 그들은 또 다른 것을 갖고 싶어하고, 현실에서 불만을 토로할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내치거나 버리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갖고 계신 계획을 향해 나가셨다. 그들이 또 그럴 것을 알면서도 개입하고 내주시는 하나님을 이곳에서 본다. 사실 광야에서 그렇게 먹을 것이 주어지는 것이야말로 기적이 아닌가? 그들은 계속 이동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정말 끝이 없다.
그렇게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고, 하나님께서 원칙을 세우시고 난 상황에서 '구스 여자 (구스는 에티오피아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내용은 그가 흑인 여성과 결혼했다는 의미일수도 있다고 한다)'와 결혼한 것을 이유로 그를 판단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 권한을 부여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른 민족이나 인종과 결혼하는 것을 금하는 명령을 하신 적이 없다. 그런데 여기에서 모세를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자가 한 선택을 판단하는 것이고, 그것이 이방인이라는 이유 또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판단하는 것이라면 그건 하나님께서 주신 규례와 상관 없는 자신들의 규례를 만들어서 그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반에 애굽을 탈출한 것에서의 감사함에서 불만을 갖기 시작하고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서로를 판단하고 자신들만의 규율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이러한 맥락에서 봤을 때 같은 민족 안에서 결혼을 하려는 유대인의 풍습이 당혹스럽다. 그들의 조상이 이방 종속과 결혼을 했다는 것은 그들 안에도 이미 '순수한 유대혈통'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사실 우리나라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과 결혼해야만 해'라는 식의 생각도 이상하다. 물론, 본인의 신앙색으로 인해 교회 다니는 사람과 만나게 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원칙처럼 세워놓고 강제할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흐름은 '하나님보다 현실을 믿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방인의 땅에 들어가 그들의 '현실'을 보고 우리가 이길 수 없다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밀착방어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 여러 구멍으로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러한 것이 없나? 성경을 우리 멋대로 해석하고 하나님의 명령이 없는 부분에서 율법을 만들어 누군가를 판단하지는 않나? 그리고 그 율법을 내가 지켰다는 이유로 스스로 높아지지 않나? 한국교회는 많이 돌아봐야 한다. 나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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