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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말씀 묵상-2020년

민수기 17-19장 말씀 묵상

하나님은 본인이 하신 일은 본인이 하셨음을 분명하게 드러내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리더를 세우는 과정에서도 이를 분명하게 보여주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러하시는 것은 아마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보여줬을 때 그것을 믿을 자들에게만 그렇게 보여주시는 것일테다. 사람들이 싸인을, 증거를 달라고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이를 주지 않으시는 것은 그것을 보여주든, 그렇지 않든 인간이란 존재는 결국 본인이 원하는 대로 결론내고 갈 것임을 아시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나서 기독교에서는 어쩌면 가장 예민할 수 있는 십일조에 대한 얘기가 18장에 나온다. 그런데 여기에서 18장을 우리는 유심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수입의 십분의 일을 가져와서 다른 수입이 없는 레위지파를 위해서 내놓으라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내도록 하신 것이 하나님 본인의 필요 때문이 아니라 작게는 레위지파의 생계, 조금 더 넓게는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 안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게 하시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은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헌금을 내도록 하신 것이지 더 많은 물질을 내면 복을 준다는 의미에서, 혹은 본인 것을 빼앗아 오는 관점에서 내도록 하신 것이 아니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교회는 과연 이러한 공동체적 역할을 하고 있을까? 십일조를 목회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사실 우습다. 이는 하나님께서 공동체를 위해서 십일조를 다른 수입이 없는 자들이 내라고 한 것인데, 그러한 맥락에서 목회자들은 결국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십일조를 내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은 십일조를 반드시 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의 원리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공동체가 왜 필요한 지를 강조하면서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헌금을 기초로 해서 본인이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리고 공동체를 하나님 안에서 세우는데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무엇인가를 할 때야 비로소 십일조와 헌금으로 마련된 재원으로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목회자를 신성시하는 한국교회의 이상한 문화가 있다. 우리 집만 해도 목사인 삼촌을 부를때 외갓집 식구들은 000목사라고 하지 000라고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이스라엘에서 제사장들은 본인 고유의 역할이 있었을 뿐이지 그들이 더 높은 위치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역할이란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의 뜻과 일이란 어떤 것인지를 전하고 공동체 안에 집중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업하듯이 규모를 키우고, 전도의 명목으로 교세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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