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의 시간은 내게 터널과 같이 어두웠다. 뭐 얼마 간의 빛을 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어두웠다. 그 안에서 나는 계속해서 미래를 걱정하며 이런저런 계산을 해야 했다. 내 나이가 몇이고, 그리면 뭐는 하고 있어야 하고, 내가 이것도 늦었네, 결혼도, 애를 가질 나이도 늦었고 돈도 모여있지 않고 등등등. 걱정이라는 걱정은 다 할 수 있는 상황에 있었다. 지난 몇 년간. 그리고 지금도 내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주위에서 지인들이 내게 근황을 함부로 물어보지 못하고 내 상태를 주기적으로 체크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아 물론 나도 정신과 전문의인 내 친구한테 가끔 내 상태가 이상한 건지 확인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내 기본적인 성격이 막연하게 불안해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걱정을 하면서 다음 계획을 세우고 그 이후에 시나리오들을 그려보는 스타일이다 보니 지난 몇년간 나는 정말 난 내가 할 수 있는 걱정은 다 해본 것 같다. 현재 상황을 놓고 한 걱정뿐 아니라 하나의 결과에 따라 그다음에 생길 일, 그리고 그 선택을 하면 그다음에 어떻게 될지를 가지치기하듯이 하나, 하나 다 해봤다.
그러고 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어느 길로 가든지 다행히도 먹고살 수는 있을 것 같고 (돈을 모을 수 있는지와는 별개로) 어느 길로 가든지 걱정할 것도 충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가 8년 전에 그만둔 그 회사에 내가 지금 다닌다고 하자. 난 결혼을 했을 수도 있고, 내가 2년간 모은 돈을 생각하면 그 수준으로만 모았어도 회사에서 저금리로 빌려주는 대출을 좀 받거나 결혼을 했다면 아내가 모은 돈을 합치면 집을 샀을 수도 있다. 차는 기본으로 이미 몇 년 전에 샀을 것이고 말이다. 그렇다면 난 걱정이 없었을까?
아마 50이 되기 전에 잘리면 어떨지를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고, 혹시나 내가 동기들보다 진급이 늦으면 그 1년간은 또 뒤처질까 봐 두려워 떨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연봉은 괜찮게 받았을 것이기에 어느 정도 이상 수준의 소비는 했을 가능성이 또 높다. 그러면 또 돈을 얼마나 모아놔야 평균수명까지 살 때까지 먹고 살 돈이 나오는지, 국민연금은 얼마나 나올 것이고 그렇다면 난 어디에 투자를 해야 할지를 고민했겠지...
그런데 어디 인생이 그렇게 가나. 많은 전문가들이 예상하듯이 몇 년 안에 집값이 떨어진다면 내가 집을 산 것이 내 수년치 연봉을 날린 것과 같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과 결혼했느냐에 따라서 휴가를 외국으로 나가고, 좋은 차를 사고, 인테리어에 돈을 어느 정도 이상 썼다면 빚은 없어도 남은 돈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내 인생의 내외부 요인들이 다양하게 작용했을 것이고 나는 어쨌든 고민하고 걱정할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어떤 환경에 살든지 걱정을 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할 수 있다. 이재용이라고 걱정이 없겠는가? 만약 뇌물죄로 잡혀 들어간다면 그가 가진 재산이 다 무슨 의미가 있는가? 코카콜라도 실적이 악화되어서 지난 몇 년간 전 직원의 1/3을 감축했다고 하는데 삼성이라고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여기까지만 나눠도 내가 얼마나 많은 걱정과 시나리오 짜는 작업을 해봤는지 대충 상상이 되실 것이다. 내가 회사를 그대로 다녔다면...이라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경우의 수만 해도 저 위에 쓴 것 외에도 한 10여개는 더 있으니까... 팀을 옮겼다면, 업무를 바꿨다면 등등등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걱정을 할 때까지 다 해보고 나니 오히려 편해지는 것을, 가진 것이 없으니 오히려 자유로운 것을 느낀다. 그래도 열심히 살았기에 큰돈을 벌진 못해도, 내가 자존심만 조금 수그리면 먹고 살 구멍은 보이고,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아도 아직 내가 하고 있던 것의 연장선에 있는 것도 있다. 그리고 인생은 사실 길게 볼 때 그 사이에서 다양한 변수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뭐가 어찌 될지 누가 알겠는가? 나만 해도 내가 재수를 할 때 내 동기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았고, 휴학 한 번 하지 않고 남들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 회사를 갈 때는 뒤졌던 걸 역전한 것 같았는데, 지금은 또 겉으로 보기에 그들이 앞서 나가 있는걸.
그래서 그냥 생각하지 않기로, 걱정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그렇게 앉아서 고민하고 걱정한다고 바뀌는 건 없더라. 그리고 그렇게 시나리오를 짜 본다고 해서 인생이 그대로 가는 것도 아니더라. 물론 이걸 머리로는 한참 전에 알았지만 사람 마음이 그걸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과 수많은 걱정들을 거쳐가야 하는 듯하다. 그리고 사람들이 큰일이 날 것처럼 말하는 것도 지나 보면 별게 아닌 경우도 많더라.
그래서 남들보다 몇 배, 아니 어쩌면 몇 십배나 많은 걱정을 한 끝에, 그냥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현재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렇게 평탄하진 않았는데, 그 덕분에 앞으로는 그래도 좀 자유롭고 편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을 듯하다. 그 길을 오면서 마음에 안고 오던 짐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간 느낌이다.
지금 걱정을 하나 가득 안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빨리 걱정을 할 때까지 하시고, 그 길 끝에 있는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상황이 바뀐다고 걱정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결국 내 관점과 마음이 바뀌어야 세상이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