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Only Live Once의 약자. YOLO. 한번 사는 이상 멋들어지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맞는 얘기다. 사람들은 때때로 전생이니, 후생이니 말하지만 사실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 입증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설사 그런 것이 존재한다고 해도 우리는 이번 생에 대한 기억이 없고 우리가 왜 그렇게 태어났는지도 알 수가 없으니 알지도 못할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있을까?
이는 현세에서도 마찬가지다. 돈을 조금만 더 모으자고, 그러면 내일 더 행복해질 거라고, 오늘의 고통이 내일의 광명을 가져올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 어리석은 생각일 수 있다. 그러다 당장 내일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 우리가 살아온 인생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래서 사실 과도한 금욕, 과도한 노동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왜 돈을 벌고, 왜 노력을 하는지를 생각해보자. 결국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산다한들 행복한 미래가 올 것이라고 누가 보장해 주겠나? 그래서 YOLO라는 표현 자체는 의미도 있고, 충분히 추구할 만한 가치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그러한 욜로가 만약 '지금 번 것은 지금 쓰자'를 의미한다면, 현재의 쾌락만을 쫓는 것을 의미한다면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그렇다. 우리는 한번 사는 인생인 것은 맞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지금 즐김으로 인해 미래에, 어쩌면 더 긴 기간 동안 비참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살아가야 한다면 그런 욜로가 우리 인생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래서 욜로에서도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지금 내 수익으로 누려도 된다고 생각되는 여유는 누리고, 조금 무리가 가는 것이 있다면 이번 달과 다음 달 혹은 정해진 기간 동안 절제를 한 이후에 그렇게 아낀 것을 한꺼번에 누리는 것을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나? 이는 욜로는 지금 순간의 쾌락과 즐거움의 수치가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느낄 수 있는 쾌락과 즐거움의 수치의 평균을 따져봐야 한단 것이다. 그래서 내가 미래를 위한 노력을 하다 질리거나 지치고, 그것만 있는 것처럼 인생을 살지는 않되 내가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는 수준의 쾌락과 즐거움을 따지면서 즐기는 것이 건강한 욜로가 아닐까?
예를 들자면 나는 대학원에 다닐 때 주택청약통장을 해지하고 그때 받은 돈으로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었다. 남들이 봤을 때는, 아니 조금 더 정확히는 어머니께서 '너 나중에 집 어떻게 사려고 그래?'라고 하셨지만 내가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내 앞에 남은 일정들을 봤을 때는 주택청약에 당첨이 된다한들 그 잔금을 낼 능력이 한동안 안될 상황이었고, 나는 그렇다면 평생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을 기회를 놓치는 것이 더 아까운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난 통장을 해지하고 나서 1주일 후에 파리행 비행기를 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미래에 대한 아무 생각 없이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단기적으로는 큰돈을 모으지는 못해도 일단 내가 먹고 살 수입은 마련이 될 상황이었고 내겐 한참 후에 만기 되는 적금도 있었다. 그러한 상황이 없었다면 난 그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지점이, 누구에게 균형점인지는 사실 누가 지정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건 본인이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욜로는 지금 당장 화려하게 활활 타고 끝날 캠프 화이어 불이 아니라, 잔잔하게라도 지속적으로 온기를 내뿜는 난롯불 같은 욜로라는 것이다. 그러한 욜로를 추구하는 것이,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더 행복하게 눈을 감을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딱 한번 사는 삶이기에, 지속적인 욜로질을 추구해야 한단 말이다. 방송에서 꿈을 얘기하는 청년에게, 생계는 해결할 방법은 우선 찾고 나서 꿈을 찾으라는 조언을 해준 사람이 생각나는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