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선을 참 많이도 했다
믿거나 말거나. 20대 초중반부터 30대 중반까지 약 10년 간 내가 주선한 누적 소개팅은 100회가 넘었다. 정확한 횟수는 모른다. 60회 정도까지는 세어봤고, 그 이후로도 30번 이상 주선했으니 대략 100회가 넘었다는 것을 알 뿐. 그게 가능했던 것은 내가 학부시절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알았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지금은 폭파한 페북 계정에 페친이 1,300명이 넘었으니 그게 그렇게 놀라운 숫자는 아니다. 회사 동기들 사이에서는 우리 기수의 결혼정보회사라고 불렸고, 회사 선배들에게는 니나 좀 연애하라고 잔소리를 들었으니까 (그 당시에는 연애를 해도 굳이 선배들에게 말하지 않고 싱글 코스프레를 했다. 연애하는 걸 알게 되면 난 회식자리에서 항상 안주거리가 될 게 뻔했으니...)
누군가는 소개팅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주선하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난 소개팅을 주선하는데 큰 부담을 갖진 않는다. 사실 두 사람이 잘될지 여부는 누구도 모르기 때문에. 예를 들면 나의 정말 친한 친구인 A가 내게 정말 좋은 친구일 수는 있지만 이성에게는 매력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고, 동성에게는 별로 매력 없는 B가 이성에게는 정말 매력적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난 항상 '큰 기대는 하지 말고 나가라. 그런데 상대가 나쁜 사람은 아니고 이러저러한 면은 둘이 맞을 수도 있을 듯하다'라면서 소개팅을 주선했다.
소개팅 주선 결과?
이 정도까지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묻는다. 결혼한 사람이 몇이나 되냐고. 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분명히 하자. 소개팅에 있어서 주선자의 책임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나고 헤어질 때까지다. 그 이후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난 보통 두 사람의 소개팅에 주선자가 본인의 책임을 다했는지 여부는 첫 만남 이후 두 사람이 더 만나볼 의향이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 기준으로 하면 난 내가 주선한 소개팅의 5할 정도에서는 책임을 다한 듯하다. 소개팅 주선을 하고 첫 만남 이후에는 항상 양쪽에 연락해서 반응을 보고, 남자 쪽에 애프터를 해도 될지를 슬쩍 흘려줬으며, 두 사람이 잘 되어가면 양쪽과 연락을 하면서 슬쩍 분위기들을 흘렸으니... 이 정도면 꽤나 괜찮은 주선자...이지 않았을까?
그런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내가 해준 소개팅은 최소한 그 자리에 나가서 짜증은 나지 않는다고. 상대와 본인이 안 맞을 수는 있지만, 내가 주선한 소개팅 상대는 항상 어느 이상으로는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그런 나의 고객(?)들의 피드백에 비춰봤을 때 난 최소한 나쁜 뚜쟁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결혼한 커플은 한쌍뿐이었고, 결혼 얘기까지 오가다가 헤어진 커플이 4-5 커플 정도 됐다. 그 과정에서 내가 느낀 것은 결혼은 정말 누구도 모른단 것이다. 결혼을 한 커플은 사실 난 결혼할 줄도 모르고, 여자 후배가 너무 이상한 남자들을 만나서 이번에는 조금 사람다운 사람을 만나보라는 의미로 회사 선배를 소개해줬는데 두 사람은 일 년 조금 넘게 연애하더니 결혼을 해버 리더라(?). 반면에 정말 결혼할 줄 알았던 커플은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한쪽이 의사결정을 못하면서 헤어지더라. 그 AS를 온몸으로 받아냈던 경험은 정말...
소개팅 주선을 해 보니...
어떤 사람들은 100회 넘게 소개팅을 주선했다고 하면 그럼 200명을 주선한 것이냐고 묻는다. 아니다. 난 보통 주선해 주는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소개팅을 주선하게 되더라. 소개팅 주선은 지인들끼리 소개해주는 것이니 그 지인에게 욕을 먹지 않을 정도의 사람을 소개해줘야 하지 않겠나? 그런 기준으로 고르고 고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한 사람에게 소개팅을 몇 번씩 주선하고 있게 되더라.
그렇게 소개팅을 많이 주선하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건 좋은 동생 또는 친구라고 해서 그가 반드시 좋은 이성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와의 관계에서 한 번도 그런 적 없던 애가 약속 시간에 1시간을 늦고, 일방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경우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서 소개팅을 주선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난 소개팅을 몇 번이나 했냐고? 세어보진 않았다. 그리고 사실 30살 때까지만 해도 난 소개팅을 거의 하지 않았다. 소개팅하는 게 싫었으니까. 그 어색함과 3-4번 만나면 그 관계를 정립해야 하는 공식이 너무나도 싫었으니까. 그런데 30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는 소개팅이 아니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가 없더라. 더군다나 난 대학원 생활을 하느라 친구들이 지인들을 초대해서 만나는 자리들에 거의 참석할 수가 없었으니. 그러다 보니, 주선한 횟수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내 또래 남자들이 소개팅을 해 본 만큼 혹은 평균보다 조금 더 많이 소개팅을 해봤던 것 같다.
내가 마지막으로 소개팅을 주선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꽤나 오래된 일임은 분명한데,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다 보면 그렇게 되더라. 주위에서 괜찮은 사람들은 가정을 꾸리거나 각자 삶의 영역에 따라 연락이 끊어지더라. 그리고 남자들의 경우에도 34살을 기준으로 소개팅이 들어오는 빈도가 확연하게 줄어들더라. 30대 초반만 해도 가만히 앉아 있어도 소개팅이 굴러들어 왔는데, 소개팅을 거절하느라 바빴는데 말이다.
그래서 동생들과 연애나 소개팅 얘기를 할 때면 난 항상 말한다. 할 수 있을 때 하라고.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는 법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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