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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연애

연애의 개인적 의미

지금까지 내가 써 온 글들에 대하여

많은 글을 썼다가 발행하지 않았다. 뭔가 연애와 사랑에 대한 글을 쓰고는 싶었지만 무엇을 쓰는 게 맞을지에 대한 혼란이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써 온 글들을 읽으며 내가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그 글들을 써 내려갔는지를 되돌아봤다. 그 글들 중에서는 내가 오랜 시간 동안 분명하게 갖고 있는 생각을 담고 있는 것도 있었지만, 순간 어떤 현상을 봤을 때, 또는 어떤 경험을 했을 때 느껴지는 느낌이나 생각을 중심으로 생각을 풀어나간 것도 있더라. 

내가 그렇게 쓴 글들에서 분명하게 답이 되지 않은 질문이 하나 있었다.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사랑'에 대한 의미부여를 하면서 논증하듯이 연애와 사랑에 대한 내 생각들을 담은 글들이 있었는데, 그게 나같이 천성적으로 계속 모든 것에 대해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있을 수 있을 수 있지만 타고난 성향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게 과연 와 닿을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생겼다. 그 설명에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 사람들도 꽤나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들더라. 그렇다면 그건 보편타당한 명제라기보단 내 생각일 뿐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게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게 모든 사람에게 설득력 있는 생각 역시 아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그런 설명을 한다고 해서 설득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

연애, 해야 하나? 어떻게?

사실 인간은 연애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그리고 연애를 하는 방법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한다.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내 브런치에서 연애와 사랑에 대한 글이 가장 많이 읽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애를 하는 것이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본인이 정말 혼자 있는 것이 온전히 행복한 사람이라면, 어차피 한번 사는 세상에서 자신의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혼자 사는 것이 낫지 않겠나? 

다만 내가 브런치 글들에서 던지고 싶은 질문은 '나는 정말로 혼자 있는 것이 더 행복한 사람인가?'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때때로 '혼자 있는 게 낫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본인이 혼자 있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사회적인 조건들 때문에 우리 스스로를 그렇게 합리화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가끔은 혼자 있는 게 필요하고 좋은 것'과 '평생을 혼자 사는 게 더 행복한 것'은 분명히 다른 것이기에...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우리는 스스로에게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외롭기 때문에' 연애를 하거나, '헤어지면 힘들기 때문에' 누가 봐도 끝내야 하는 연애를 끝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그 지점에서 스스로에게 한번 연애를 왜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솔직하게 말해서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행복하기 위한 선택을 하지 않나? 그렇다면 연애를 하는 데 있어서도 의사결정의 중심은 자신의 행복이 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런데 모든 연애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렇다면 상대와 만났을 때 행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행복해지지도 않을 것 같은 연애는 시작을 하지 않던지 빨리 끝내는 것이 지혜롭지 않을까? 

그리고 연애를 하는 데 있어서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끼는 지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니, 한 사람도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행복의 지점이 모두 다르지 않나? 작은 예로 들자면 유치원에 다닐 때, 초등학교 시절, 중고등학교 시절과 30대, 40대 때 우리의 입맛이 변하고 그에 따라 우리가 먹었을 때 행복해지는 음식이 달라지지 않나? 그리고 10대와 20대 때는 치열하고 다이내믹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비율적으로 더 많아 보이지만 30대 이후에는 그러던 사람들이 안정을 추구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주위에서 보지 않는가? 또 같은 연령대라 하더라도 모든 사람의 입맛, 그리고 추구하는 행복의 방식이 다르지 않나? 그러한 '다름'은 다름일 뿐 '틀림'이 아니다. 

이는 연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연애를 하는 비법, 행복해지는 비법을 공식처럼 원하지만 그런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평균적으로 무난한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살다 보면 평균적인 것, 평범한 게 때로는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닌가? 결국 연애 역시 자신의 취향, 성향 등이 영향을 미치며 그에 따라 연애의 방식도 당연히 달라지게 되어 있다. 이는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지점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애는 이렇게 해라> 또는 <작업은 이렇게 해라>라는 것이 단기적으로 말초적인 감정이나 욕구를 충족시키거난 형식적인 측면에서 연애를 하고 있다는 '스펙'을 만들어주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그것이 관계적인 측면에서 진짜 행복, 사랑, 안정감을 느끼는 데 있어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와 나의 관계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연인이라고 불리는, 연애라고 불리는 관계를 유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상하게도 사회적으로 '연애와 결혼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치 그에 맞춰서 살지 않을 것 같으면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되는 분위기도 우리 사회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그러한 연애와 결혼에 있어서도 사회에서는 '이런 연애와 결혼을 해야 해'라는 것이 강요되는 것이 사람들이 꼭 특정한 스펙, 외모, 집안의 사람과 연애 또는 결혼을 해야만 행복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물론 그러한 요소들 중에 '일부'는 우리에게 필요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기준이 제시되는 것은 '평균적인 것'이기 때문에 내 안에 그러한 평균적인 부분과 맞는 요소가 있다면 그 조언들이 잘 맞아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그러한 '평균'이라는 것은 사실 대부분 사람들에게 맞아 들어가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이는 숫자 2,3,4와 6,7,8을 모두 더해서 구한 평균은 5이지만 그 목록에 5는 존재하지 않듯이, 한 사회에서 행복에 대한 평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사실 그 사회 구성원에는 그 평균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연애와 결혼에 대해서 결정함에 있어서 그러한 평균적인 것에 대한 의견을 존중할 필요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내가 그 평균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러한 평균은 우리 윗세대 분들의 조언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과연 그분들의 세대와 우리 세대가 같은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가정에서부터 여자들에게 대학 진학을 하기보다는 빨리 결혼하라는 분위기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에 따라 사회생활은 남자들이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남자가 돈을 잘 버는 것, 집을 해오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유치원이나 탁아소가 그렇게 발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를 건강하게 양육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집에서 아이를 볼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 보니 혼인상대로는 일하는 여성보다는 집에서 서포트를 해 줄 여성을 더 선호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물론 여전히 남녀의 임금 차이나 실질적인 기회의 차이가 존재하기에 이를 감안하기는 해야 하지만, 그 당시보다는 남녀 모두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상대적으로 더 조성이 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육아에 있어서도 여전히 유치원 시설 등이 한계를 갖기는 하지만 과거보다는 환경이 많이 나아진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사회적 변화에 따라 상대에게 요구하는 기준 역시 달라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러한 기준은 70-80년대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듯하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지만, 우리 개인을 위해서 사는 부분이 크다. 아주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사회나 국가를 위해서 헌신하는 것도 그 공동체를 위해서 그러는 부분도 있지만 그 안에서 일정 부분은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 하는 측면도 있지 않나? 마찬가지로 연애나 결혼을 하는 데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나'라는 개인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연애의 핵심은 '나'

나는 지금도 왜 사는지에 대해서 꽤나 자주 물음표를 던진다. 사춘기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그에 대한 고민을 간간히, 때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던져봤지만 그 답은 하나로 수렴된다. 핵심은 몇 년 뒤에 내가 얼마나 행복할지에 있지 않고, 내 생애 전체의 행복의 총량을 따져봤을 때 그 평균을 높이는 데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첫 번째로 내가 어떤 순간에, 어떤 사람과 있을 때 행복한지를 스스로 깨닫는 것이고 두 번째로 지금의 내 삶이 행복한 것이다.

이것을 연애에 대입하자면, 지금 내가 구체적인 대상과의 관계에 있을 때 나 혼자 있을 때보다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연애를 하면 되고, 그러한 기대 가능성이 분명하지 않을 경우 두 사람은 그러한 가능성을 탐색해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연애가 시작되지 않겠나? 하지만 그런 신뢰 가능성이 없을 경우에는 굳이 무리해서 연애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한 번 사는 인생, 행복하게 사는 게 좋지 않나? 

그리고 연애를 하는 데 있어서도 우리는 상대방과 지금 어떠한 부딪힘이 있을 때 그것이 우발적인 것인지, 아니면 두 사람의 내면에 있는 근본적인 문제인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면서 그 사람과 있을 때 더 행복한지 아니면 혼자 있을 때 더 행복한지를 진지하고 신중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결론이 난다면 고민하는 시간을 더 끌기보다는 빨리 결정을 하는 것이 본인의 행복을 위한 지름길일 것이다. 연인 간의 관계에 문제가 있을 때도 우리는 한걸음 물러서서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과 있을 때 더 행복한지'를 고민해 봐야 한단 것이다. 사람들은 때로는 '이 사람만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실제로 그만한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으나, 그 사람과 같이 있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이 더 행복함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를 유지한다면 그건 '더 행복한 삶'이 아닌 '덜 불행한 삶'을 선택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나? 

그래서 사실 우리는 연애를 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야 하며, 내가 혼자인 것보다 같이 있을 때 더 행복할 것으로 기대되는 사람이랑만 연애를 하면 된다. 하지만 인간은 다차원적인 존재이기에 우리의 그러한 판단이 잘못되었을 수 있고 그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판단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 내가 모르던 상대의, 그리고 나의 모습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는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상대와 함께 하는 것이 혼자 있을 때보다 불행하다고 여겨지면 헤어져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모든 연애는 그러한 경험이 축적되어 내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사람과 있을 때 행복한지를 알아가는 과정이며 그 끝에 우리는 혼자 사는 것이, 혹은 결혼하지 않고 연애만 하는 것이, 혹은 법제도에 갇히기보다는 그저 동거를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또한 지금 내가 지은 결론이 시간이 지나면서, 혹은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연애와 결혼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하며 그 결론에 대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나의 행복'이어야 한다. 그리고 결혼은 그 사람과 있을 때 힘들고 불행한 순간도 있겠지만, 그래도 내가 혼자 있을 때보다는 같이 있을 때 행복의 총량이 더 클 것이라는 신뢰가 있을 때 결심하는 것일 것이다. 

이러한 결론에 대해서 어떤 이들은 '결국 혼자 사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것 아니냐'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이 '내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기쁨과 행복'에 대해서, 내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서 더 큰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리고 때로는 서로에게 법적으로 약속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안정성이 어떤 이들에게는 인생에 있어서 행복이 축적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비판일 것이다. 

물론 본인은 그런 것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그저 본인이 그런 삶을 살면 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그런 지점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판단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그와 같이 본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본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행복을 침해하거나 자신과 같은 방식의 행복을 강요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점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본인이 다른 사람과 다를 수 있는 만큼, 다른 사람도 본인과 얼마든지 다를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글을 써놓고 다시 읽어보니 뭔가 좋은 말은 많은데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내가 연애에서 내가 행복한지 여부를 판별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