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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사랑

사랑의 시작

이성에 눈을 뜨다.

지금 돌아보면 귀엽고 우스워보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나는 굉장히 어린 나이에 '이성'이라는 존재에 대해 눈을 떴던 것 같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내 눈에 너무 이뻐 보이는 여자애가 있었고, 4학년 때는 같은 반에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던 한 여자아이를 정말 좋아했었다 (20년이 넘은 지금도 그 친구들의 이름이 기억나는게 신기할 정도로...). 어머니 심부름으로 마트에 갔다가 오는 길에는 꼭 그 아이가 살던 907동 그 아이의 방을 보고 '자는구나' 또는 '뭐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 내 카메라에 담겨있는 필름을 인화하면 그 아이의 사진만 하나 가득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이성에 눈을 뜨고 나서, 또 사춘기를 지나며 내게 닥친 가장 큰 난제는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다들 누구를 사랑한다는 말을 너무 쉽게 말하는데 나는 사랑한다는 것, 좋아한다는 것, 호감이 간다는 것의 경계를 모르겠더라. 사람들은 그 세 가지 표현을 누구에게 감정을 표현하느냐, 얼마나 그 사람을 지켜봤느냐를 기준으로 사용하는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사랑이라는 표현

그러다 보니 연애를 할 때도 나는 한동안 '사랑한다'는 표현을 잘 하지 못했다. 너무 고지식해서 '사랑이 뭔지도 모르겠는데 어떻게 사랑한다고 말한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인해 여자 친구가 정말 섭섭해하기도 했지만, 그때는 그 말을 하는 게 참 어려웠다. 사랑한다는 말을 너무 남발해도 안되지만, 그걸 그렇게 사용 못한 것도 참... 지금 돌아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만나줬던 그 친구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러는 과정에서 사랑에 대한 정의를 정립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종교적인 영향이 컸다. 사랑이 무엇인지 도저히 모르겠던 내게 또 다른 딜레마는 사랑이라는 표현이 남자와 여자의 관계뿐 아니라 친구, 가족과 다른 집단이나 공동체에서도 사용되었는데 그렇다면 그러한 사랑들의 공통분모가 무엇인지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평생을 들어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라는 것이 갑자기 사랑과 연결이 되면서 '사랑이란 상대를 나 자신만큼 아낄 줄 아는 것'이라고 스스로 정의하게 되었다. 한창 기독교가 진실이고 진리인지, 그렇다면 왜 그런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심할 때 일어났던 일이다.

사랑과 신뢰

그런데 또 상대를 나 자신만큼 아낄 줄 아는 것이라는 정의도 현실에서는 추상적인 것이 사실이다. 또 상대를 완전히 나와 똑같이, 내가 상대를 위해 목숨을 줄만큼 사랑할 수 있는지를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래서 이 정의가 맞다고는 생각하지만, 또 현실에서 기준으로 삼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또다시 고민이 시작되었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며 연애를 하던 중에 깨달은 사실은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내가 상대에 대한 신뢰를 갖는 정도가 다르단 것이었다. 연애 초기에는 상대가 남자랑 단 둘이 뭔가를 했다고 하면 그 사람에 대한 이성적인 관심이 있는 건 아닌지 신경이 쓰였지만, 그 사람과 연애기간이 길어질수록 그런 걱정을 덜하기 시작하더라. 이는 상대와 우리 관계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쌓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상대를 나만큼 아낀다는 것은, 상대를 그만큼 신뢰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사실 누군가를 완전히 신뢰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우리는 연인에게 '너는 나를 그렇게 못 믿니?'라고 묻기도 하지만 당신을 상대가 믿을 근거가 있어야 믿을 것 아닌가? 당신이 그 사람 입장에 서 있다면 당신을 완전히 믿을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며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되는데... 감정적으로 설레이고 당신이 좋은 것은 좋은 것이고, 당신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사실 사람들은 상대를 만날 때의 설레임과 감정적인 동요를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감정만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유지되지도 않고 그런 감정을 따라 누군가를 만난다면 인간은 한 번에 여러 명을 만나거나, 계속해서 만나는 사람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좋아하는 연예인을 직접 보거나, 정말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설레이는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 않는가? 또 그 설레임은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사그러 들기도 하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감정을 기준으로 사랑을 말할 수는, 아니 말해서는 안 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국 상대를 정말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간의 단단한 신뢰를 갖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바람을 피우면, 상대가 내 편이 아니라 다른 사람 편이라는 마음이 들면 우리는 실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러한 신뢰가 깨어질 때 두 사람 간의 사랑에 금이 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은 정해진 나이와 조건이 아니라, 상대와 평생을 함께 해도 되겠다는 믿음이, 신뢰가 생겼을 때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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