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회사에 다닐 때 나보다 10살 이상 많은 선배가 해준 말이었다.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는 현실에 존재한다고. 열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다는 말을 믿고 한 사람을 3년, 또 다른 사람을 2년 이렇게 찍다 보니 어느새 30대 후반이 되었다고. 그런데 지금 같이 사는 아내와는 소개를 받고 그냥 흘러, 흘러가다 보니 어느새 식장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되어있더라고.
그렇다. 열 번 찍어서 넘어가지 않는 나무도 있다. 물론 열 번 찍어서 넘어가는 나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듯하다. 그리고 서로 연락을 할 수단이 발달되어 있지 않은 시대에는 열 번 찍을 때까지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많았겠지만 사실 이제는 SNS나 카톡 등을 통해서 서로를 알기가 너무나도 쉬워지지 않았나?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지만, 일단 어느 정도 이상은 상대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게 훨씬 용이해지지 않았나? 이러한 환경에서는 두세 번 정도 아니라는 사인을 상대가 보냈다면 그 관계는, 최소한 지금 당장은 인연이 아닐 가능성이 최소한 과거보다는 높은 듯하다.
찍더라도 자연스럽게
그렇다고 해서 한 번 해보고 안되면 끝이다!라고 받아들이라는 건 아니다. 처음에는 아니었던 사람도, 그 사람이 상대에게 신뢰를 줄 정도로 꾸준히, 계속해서 옆에 서 있다 보면 처음에 보이지 않던 그 사람에게 눈을 돌리게 되는 경우는 분명히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냥 '찌르고 보는'것이 아니라 본인의 진심을 담아서 상대에 대한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갖는 많은 불만 중에 하나가 요즘 남자들은 간 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다는 것이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애매하게 찌르다가 다른 사람으로 넘어가는 게 말이 되냐며...
그러니 정말 누군가가 마음에 들면 그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그걸 자연스럽게 하자. 너무 내 분수에 넘치지 않게, 그렇다고 또 앞 뒤를 재느라 너무 소극적이지도 않게. 자신의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다가가고 그렇게 받아들이자. 서로 만나게 되고, 마음이 움직이는데 그걸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막지도 말고 어느 정도는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두고 지켜봐 주자.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사람이 인연이 아닐까?
인연이라는 것.
어떤 사람들은 인연이라는 것, 운명이라는 것이 어디 있냐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30대 후반에 결혼한 그 회사 선배는 강력한 의지론자였다가 결혼을 하면서 운명론자가 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이 있는 반면 노력은 하지 않았는데 그냥 흘러가는 대로 되는 것들이 있더라는 것이다. 그 형님과 형수님은 서로가 이상형도 아니었고, 오히려 만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배경의 사람들이었는데 서로의 만남이 편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계속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너무 노력을 강조하면서 사실 우리에게 있는 인연이 엇갈린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 앞뒤를 놓고 계산을 하기에 운명이 어긋난 것인지도 모른다. 혹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우리 인생들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어디 모든 일이 우리가 생각하고 계획하고 노오력하는 대로 되던가? 우연과 우연이 겹치면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많은가?
상대를 향해서 마음이 엄청나게 뛴다고 해서 상대가 거부하는 데에 열 번 찍는다는 마음으로 무조건 밀고 들어가지 말자. 그 사람이 우리의 인연이고 운명이라 하더라도 그저 지금이 맞을 때가 아닐 수도 있다. 정말 지금 만날 운명이고 인연이면 지금 만나게 되지 않을까? 그 사람이 아니라면 또 어딘가에 맞는 사람이 있겠지. 그리고 상대에 대하여 마음이 움직이고 자연스럽게 둘의 관계가 흘러간다면 그 흐름에 나를 맡겨보는 것은 어떨까? 상대의 현실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사람들의 현실이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모르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소개팅이라는 인위적인 방법을 통해서 사람을 만날 때도 첫 만남 이후에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던 사람이 있었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었더라. 그리고 헤어지고 나서 후회를 할 때도 있었지만 결국 그때 상황으로 그때의 내가 돌아간다면 똑같은 결정을 했겠더라. 그 사람과 나의 인연이 그저 거기까지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나간 일을 가지고 너무 후회를 하거나, 잡히지 않는 사람 때문에 너무 고민하지 말자. 그리고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것도 애써서 피하지 말자. 인연은 타이밍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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