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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두 글자로 보는 세상

역사

개인적으로 역사라는 과목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왜 배워야 하는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그에 대한 시험을 보는 방식이 싫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언제 무슨 사건이 일어났고, 무슨 왕 이후에 무슨 왕인지를 내가 왜 알아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난 암기를 지금도 잘 못하는데 사실 그게 정말 그럴 능력이 없어서 싫어하는 건지, 아니면 암기가 싫어서 안 하는 게 습관이 된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내게 역사는 그랬다. 그저 옛날에 일어났던 일. 내가 왜 그걸 알아야 한단 말인가? 왜 국사를 알아야 하나? 국사는 내가 태어난 땅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사실관계니 그렇다고 치자, 내가 대체 왜 세계사를 알아야 한단 말인가? 나폴레옹이 나랑 무슨 상관이며, 아이젠하워가, 모택동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히틀러 정도면 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또 사람들은 누가 그걸 알고 말고를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데 그거 몇 개 아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모를 수도 있는 거지 그걸 갖고 우쭐대거나 사람을 판단하나?라고 생각했으며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사실 큰 변화는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화학 공식을 모르는 것과 역사적인 사실을 모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본의 아니게(?) 억지로(?) 역사를 봐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서 인간세상이라는 게 본질적으로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암기'가 아니라 맥락적으로 '이해'하게 되면 사람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지금 일어나는 일들 이면에 어떤 게 있을지를 감각적으로 추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역사를 일반론적으로 공부하는 게 인간과 인간이 모여서 만든 사회에서 어떤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를 알게 해준다면,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역사를 아는 것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현상들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역사를 전반적으로 보는 눈이 생기고, 그 눈을 갖고 내가 살고 있는 땅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바라보면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게 된단 것이다.

사실 그렇지 않나? 한민족이라는 것, 소위 말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민족성'이라고 불리는 것은 좁디좁은 한반도에서 중국의 강국들에게 치이면서도 생존하는 과정에서 생긴 게 아니겠나? 한번도 안정적인 적이 없었던 곳이 아닌가 한반도는? 어쩌면 우리가 옛것을 소중히 여기고 보존하는 습관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은 이 땅에서 무엇도 안정적으로 보존될 수 있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반도에 크고 작은 침략이 총 933번 일어났다고 하는데, 반면년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하면 5년에 한 번은 침략을 당한 셈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 뭔가를 보존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었겠나. 이 땅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에겐 항상 생존이 화두였을텐데.

위 내용이 좀 부정적이게 보이지만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빨리빨리, 영민함, 치열하게 사는 경향도 사실 거기에서 오는 게 아닌가 싶다. 새로운 곳에 가서도 잘 적응하면서 사는 것도 마찬가지. 생존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야 했겠나? 모든 것은 동면의 양면과 같이 장점과 단점을 함께 가져오는 법 아닌가?

우리는 사실 무의식 중에 주위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산다. 그래서 '사회적 분위기'와 내가 있는 곳의 '문화'에서 자유로우 해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라는 것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서 오랫동안 살면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듯 시간과, 사람들의 삶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 우리가 있는 이 땅의 일들이, 분위기가, 문화가 만들어졌기에 누구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문제도, 좋은 일도 사실 온전히 누군가의 탓도, 누군가의 덕도 아닌 것도 그 때문이다.

그게 조금 더 아래로 내려오면 가족에게, 인간관계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내가 되게 성격이 이상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마치 지금은 아닌 척...) 돌아보면 내가 그랬던 이유가 있었다. 우리 집안 분위기의 영향이 있었단 얘기다. 항상 경쟁하며 치열하게 살아야 했고, 뭔가를 잘해도 칭찬을 들을 수가 없었던, 하지만 뭔가를 끊임없이 경험하게 해주려고 하셨던 부모님.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란 특성이 내게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 되신 건 또 그 이유가 있었더라.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영향. 부모님 형제와의 관계에서의 경험. 그 환경이 두 분을 모두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로 만들었더라. 그런데 또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6.25 전쟁의 영향을 받으셨더라. 피난 내려오시면서 경험하신 아픔, 그때 경험하셨던 잔혹함.

  깨달은 건 때로는 어떤 것이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말로 그저 우연히 어떤 배경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만났기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더라. 두 사람의 관점이 다를 뿐, 자신이 경험한 것에 따라 다른 렌즈를 보고 세상을 보고 있을 뿐 누가 악의를 갖고 뭔가를 한 게 아닌 경우가 훨씬 많더라.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이 보이는 모습, 하는 말, 말투가 마음에 안 들어도 쉽게 판단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리고 사람들 '개인의 역사'를 알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걸 알게 되면 상대방의 말이, 행동이 그에 따라 해석되고, 그에 따라 이해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우리는 그럴할 수 있기 위해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게 아닐까. 개인의 역사를 보는 눈이 하루 아침에 생기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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