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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두 글자로 보는 세상

배우

배우는 매력적인 직업이다. 현대사회에서 그들이 벌어들이는 수입 때문이 아니더라도 인생은 한 번 살면서 여러 사람의 삶을 살아볼 수 있기 때문에 매력적인 직업이다. 사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 연극부를 했고, 경남 청소년 연극제까지 나갔었는데, 연기를 하겠다니 어머니께서 난리를 치며 반대를 하셨었다. 불안정하고 극소수를 빼고는 보통 굉장히 가난하게 사는 것을 아셨기에 그러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우리를 훈련시키셨던 극단 선생님이 '넌 발음이 좀 불안정하니까 연기 말고 무대 같은 쪽으로 해보면 어떠니'라고 하시지 않았다면 난 아마 어떻게든 연기를 하려 들었을 것이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연극 동아리들을 기웃거렸으니까.

그래서 사실 연기를 꼼꼼하게 보는 편이고 드라마보다는 영화, 영화보다는 연극을 좋아하는 편이다. 드라마는 시간이 촉박해서 어지간히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면 연기가 흔들릴 수밖에 없고, 영화는 여러 컷을 찍어서 가장 좋은 것을 넣으니 상대적으로 연기를 잘한 화면이 나올 가능성이 높고, 연극은 배우들과 교감할 수 있는 게 좋기 때문에. 그래서 가본지는 너무 오래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소극장 연극을 제일 좋아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연기에만 집중하는 배우가 이제는 많은 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 다른 나라들보다 연예인들이 광고에 나오는 비율이 우리나라는 유난히 높은 것 같고, 배우들도 연예인으로 분류되어 광고에 자주 등장한다. 사실 어떤 배우들은 배우라기보다는 광고모델이 주업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나오는 광고에 비해서 참여하는 영화의 숫자가 적은 경우도 많다. 배우가 영화를 자주 찍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작품은 하지 않고 광고만 여러 개를 계속 찍으면 그건 배우가 아니라 광고모델이 아닐까? 연기는 조금 광고가 주춤하면 다시 광고를 더 찍기 위해서...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내가 조금은 비판적으로, 삐딱하게 보는 것은 그렇게 지내면서 '나를 너무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로 판단한다'라는 식으로 인터뷰를 하거나, '나는 진정한 배우가 되는 게 가장 우선인 사람이다'라고 하는 경우의 사람들이다. 감독은 특정 역할을 할 때 대중들이 받았으면 하는 느낌이 역할마다 있기 나름이고, 그에 따라 대중들이 특정한 느낌을 받는 배우를 섭외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특정 배우가 광고에 반복적으로 나오면 대중들은 그 광고적인 이미지를 그 사람에게서 받을 수밖에 없기에 감독들은 그 사람을 섭외하기를 꺼릴 수밖에 없다. 화려한 명품 브랜드 모델을 몇 년씩 한 사람이 슬럼가에서 살인자의 배역을 맡으면 거기에서 괴리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고 김주혁 씨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안타까웠던 건 그가 1박 2일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정말 연기를 사랑하는 배우였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들도 있었지만, 아마 그는 1박 2일에 나옴으로 인해서 자신에게 특정한 배역만 반복적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껴서 하차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기에. 반면에 차태현씨 같은 경우 원래 유쾌하고 밝은 캐릭터 연기를 많이 했기 때문에 1박 2일에 나오는 것이 그렇게 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차태현 씨는 아이를 둔 가장이고 고 김주혁 씨는 싱글이었던 것도 두 사람이 다른 결정을 내리는데 큰 역할을 했겠지만...

어쨌든 배우는 프로이고, 자신의 길은 자신이 만드는 사람이다. 적절한 작품이 항상 들어오는 것은 아니기에 적당한 수준의 광고를 찍는 건 이해할 수 있고, 또 그러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정말 연기가, 좋은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라면 그 과정에도 자신의 이미지를 어떻게 구축해 나갈지 고민하면서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 그게 아니고 수입이 주된 목표라면 실질적인 광고모델처럼 활동하면서 전략적으로 중간중간에 연기를 하는 게 비판받을 일은 아니다. 다만 그런 경우에도 연기에, 배우로서의 목표가 훨씬 확고한 것처럼 인터뷰하는 건 조금, 많이 가식적으로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배우를 하려는 사람도 늘어났고, 연극 영화 관련 학과들이 매년 졸업생들을 쏟아낸다. 그리고 연극 영화 관련 전공을 하지 않은 이들도 연기를 하려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그 시장이 치열해졌기에 생존전략으로, 때로는 기획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광고에 집중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는 패턴 자체를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중이, 감독들이 자신에게 다양한 배역을 오퍼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다 본인이 한 선택들의 결과일뿐이기에. 억울한 마음이 이해는 가지만, 대중이 본인이 본질적으로 어떤 사람인지까지 알아주는건 이기적인 것이다. 

그래도 올해 연말 시상식들에서는 꾸준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빛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의 삶을 열심히 살아내며 그 자리를 지켜온 배우들이 시상식에서 많이 보여서 가슴이 참 따뜻해졌다. 몇몇 분의 시상식 소감은 반복해서 돌려봤을 정도로. 그런 배우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의 연기가 누군가에게는 삶의 활력소가, 큰 깨달음이 된다는 사실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런 배우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그런 통로가 되어주는 배우들이 참으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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