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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두 글자로 보는 세상

일상

지금은 시골에 가신 어머니, 아버지께서 일주일 간 여행을 다녀오셨을 때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집에 오시면 피곤하실 것이고, 내가 집을 다 치울 수는 없지만 더럽지는 않아야겠고, 빨래할게 많으실 테니 빨래도 다 해야겠더라. 그래서 저녁에 잠시 걷고 와서 로봇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 빨래를 한 후 새벽 5시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서울에 도착하시는 시간이 6시 예정. 자취할 때 사서 지금 내 방엔 거추장스러운 카우치에 앉아서 꾸벅꾸벅이며 졸다가 확인하니 6시 44분에 도착. 전화해보니 아직 전화기를 켜지 않으신 것 같더니 10분 후에 곧 공항버스를 타신다고 연락이 왔다. 15분 정도 거리에서 전화를 하셨고, 차를 끌고 나가자마자 공항버스가 도착하더라. 일이 있어서 급히 나갔다 와보니 아버지께서는 주무시고, 어머니께서도 지친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계셨다. 어머니, 아버지 빨래를 널고 설거지를 하고 배가 고프시다며 뭔가를 계속 주워 드시는 어머니 손에서 시리얼을 빼앗고 치아시드 바를 드리고 방에 들어왔다.

시시콜콜한, 정말 어찌 보면 집안일만 했던 24시간 정도 되는 시간 동안의 나의 일상이었다. 심사가 얼마 안 남아서 매일 글자를 읽고 쓰기만 하다가 오랜만에 이런저런 다른 일상을 보냈더니 그 일상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듯했다. 자취할 때는 매일, 최소한 매주 반복적으로 하던 일인데 말이다. 

하루, 이틀은 설거지를 해도 그냥 두시지만 한 삼일을 연달아 설거지를 하면 너 할거 하라며, 너 설거지하러 다시 집에 온 거 아니지 않냐고 하셨던 분이 내가 집안일을 하는 걸 눈 앞에서 보면서 가만히 계신 걸 보면 피곤하긴 피곤하셨나 보다. 그 과정에서 문득 이런 게 행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다시 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누군가가 좋아해 줄 작은 일들을 하면서, 내가 그런 일들을 해줄 수 있음으로 돌아오는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사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바깥일'은 본디 그러한 일상의 작은 행복들을 이어가기 위한 수단이어야, 아니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처음부터 삶의 목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산업화가, 자유주의가, 자본주의가 우리 삶에 들어온 이후였을 것 같다. 사실 산업화를 한 것은 더 효율적으로 생산해서 더 일상을 풍요롭게 누리기 위한 것이었고, 자유주의는 모든 사람들의 자유를 가장 중요시하는 사상이었고, 자본주의는 거래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도입되었을 텐데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수단이 목적을 잡아먹고 스스로 목적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사람들은 내일을 위해 오늘의 일상을 포기한다. '나의 일상'을 말이다. '언젠가는' 올 풍요로운 나의 일상을 위해서. 그런데 산업화가, 자유주의가, 자본주의가 그랬듯이, 본질을 놓고 사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리면 인간이란 존재는 어느 순간 본질이 무엇인지를 망각하게 되고, 자신이 매몰되어 있는 상황을 본질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지금, 오늘, 우리의 일상을, 회사나, 상사나, 거래처의 일상이 아닌 '나의 일상'을 매일 조금씩이라도 살아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거룩한 척 말을 하고 있지만 사실 나라고 별반 달랐겠나? 사실 며칠 전에서야 내가 심사에 너무 매몰되어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냥 내 글을 쓰자'고 생각했다. 그러자 조금은 편하게 되었고, 조금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더라. 인간이란 존재는 이렇듯, 머리로 알아도 현실에 매몰되면 내가 그러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듯하다. 

언제 올지도 모를 미래의 나의 일상을 위해 남의 일상만 살아내지는 말자. 그러다 보면 나의 일상은 어느새 영영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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