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론이란?
고지론이라는 말 자체가 사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익숙할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이 표현을 교회 안에서만 들었기 때문에. 고지론이라 함은 쉽게 설명하면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이 필요하고 좋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가거나 돈을 많이 벌고 영향력을 많이 미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주로 사용이 되는 듯하다.
사실 이러한 고지론은 한국교회에 만연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인데... 이는 아마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한국교회에 대해서 많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니까 대통령이 되어야 하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니까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고, 교회 다니는 사람이 CEO인 회사의 제품을 사야 한다는 얘기가 사실은 다 고지론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것일 테다.
그런데 이런 고지론은 그러한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도 현저하게 낮은 수준의 모습을 보여주는데서 그 한계를 드러낸다. 형식적으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고 해서 이 세상이 더 성경적으로 변한 적은 거의 없는 것은 왜일까? 오히려 그들이 그런 자리에 감으로써 한국교회가 더 비판받고 비난도 받게 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우리가 그런 고지론적인 생각을 갖고 누군가를 밀어주거나 지지하는 것이 사실은 '고향사람'이라는 이유로, 혹은 특정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 후보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밀어주거나 지지하는 것과 사실은 똑같은 현상이 아닌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과 고지론
혹자는 '그래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그런 자리에 가는 게 더 낫지'라고 반박을 할지도 모른다. 물론 최악보다는 나을지는 모르겠지만 글쎄... 그런 반박에 대해서는 이렇게 묻고 싶다. '우리 하나님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만 쓰고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은 사용하지 못하시는 제한된 하나님인가?'라고 말이다. 만약에 진짜로 모든 것을 알고 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면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을 쓸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사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나 기업이 어떠해야 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 말은 뒤집어서 생각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세상이 더 바르게 되지 못해'라는 것을 의미하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님의 삶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내내 지금 한국교회의 고지론자들과 비슷한 모습을 갖고 있었다. 누가 예수님의 우편에 앉을지, 좌편에 앉을지에 대해서 그들은 논쟁을 벌였으며 그들은 예수님이 진짜로 물리적으로 '왕'이 될 줄 알고 그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했는가?
예수님은 왕이 되시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예수님은 돈이 많은 귀족들을 찾아다니지 않았고 힘든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당시에 가장 천대를 받던 세리와 창녀들의 집에서 머무셨고,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기도 했던 이방인들까지도 품어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끝까지, 단 한 번도 잘 먹고 잘 사신적이 없다. 예수님은 그 제자들이 밭에 들어가 알곡을 손으로 비벼서 먹어야 할 정도로, 마지막에는 나귀를 '빌려서'타셔야 할 정도로 유목민과 같은 삶을 사셨다.
그런데 왜 그런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겠다고 고백하는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예수님과 정 반대의 삶을 살고, 추구하고 있는 것인가?
한 사람의 삶을 바꾼다는 것
한국교회가 이처럼 고지론적인, 세상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잘되어야 하고 큰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데는 어쩌면 우리나라 특유의 문화가 영향을 미친 것인지도 모른다. 사농공상으로 순위를 매기고 어떤 일은 천하고, 어떤 일은 귀하다고 순위를 매기던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쩌면 무의식 중에 모든 역할에 순위표를 매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을 밑에 놓고 다스리는 듯한, 영향력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미치는 듯한 자리를 목표로 삼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자. 높은 자리에 간다고 그 영향력 밑에 있는 사람들이 그 사람의 완전한 영향력 밑에 들어가는가? 특정 기독교 기업에서 일하는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이 겉으로는 동화되는 듯해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상당수 존재하지 않는가? 특정 기독교인 사무실이나 의원실에 있는 이들도 오히려 그들 밑에서 반기독교적이 되지 않는가? 그런 자리에 누군가 간다고 해서 그 사람의 '영향력'이 반드시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깊게 미치는 것은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런 자리에 있으면 오히려 다뤄야 할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지기에 개개인들에게 미치게 되는 영향력은 오히려 감소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어떤 이들은 이런 얘기에 '그래도 만 명이 그 밑에 있으면 10명이라도 영향을 받겠지'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자, 그 만 명 중에 본인 사람 옆에 있는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삶을 사는 기독교인이 100명 존재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만 명 중에 100명이 기독교적 가치에 공감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높은 곳에 1명이 있는 게 나을까? 아니면 한 사람에게 성경적인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삶을 사는 사람 100명이 있는 게 나을까? 그리고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대통령이나 회사 회장보다는 옆에 있는 사원, 대리, 과장, 차장의 영향을 더 받게 되지 않나?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것은 높은 자리에 가는 것일까 아니면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성경적인 삶을 사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한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고 그 사람을 바꾼다는 것을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우리가 모든 것을 사회적, 국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인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가지 않는가? 100명 중에 1명이 망하게 되면 사회적으로는 그 사회가 나쁘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그 망한 1명은 나머지 99명이 어떻게 사는지와는 무관하게 그에게는 이 세상이 무너진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의 삶은 하나의 세상을 의미한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하나의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이기에 이는 큰 의미를 갖는다.
왜 영향을 미쳐야 하는가?
여기에서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너희가 뭔데 영향을 미쳐라고 해? 너희끼리 잘 살아! 강요하지 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리고 난 그 말에 핵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는 세상에, 다른 사람들에게 억지로 뭔가를 주입하고 사람들을 끌고 오려고 할 필요가 없다. 아니 나는 그런 것은 오히려 그 사람들에게 반작용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삶 하나를 제대로 성경적으로 살아내는 것일 테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진짜 성경적으로 삶을 살게 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구분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런 삶이 지속될 때야 비로소 사람들이 신기해하고 우리뿐 아니라 우리가 믿는 신과 예수님에 대해서 궁금해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 하냐고 묻는다면, 그만큼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데는 진짜로 큰 기쁨과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인가 정말 맛있는 것을 처음 먹었을 때 가족이나 주위에 친한 사람들도 그 맛을 보게 해주고 싶은 것처럼,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기준과 가치들에 따라 삶을 살아갈 때만 느낄 수 있고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고 그것들이 너무나도 좋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도 알게 해주고 싶은 것이 사실은 '영향'을 미치는 것의 본질이어야 한다.
그래서 사실 기독교의 모든 것은 개인의 성화에서 시작된다. 내가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며 성경에서 말하는 가치를 따라 삶을 살아내는 것이 우리에게 1순위여야지 사회적으로 어떤 자리에 가고 몇 사람을 아래에 두는 것이 핵심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영향력은 모두 겉으로 보이는 영향력일 뿐 그러한 지위에서 미치는 영향력이 사람들의 내면에까지 근본적인 부분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한국교회 일각에서 제기되는 고지론적인 주장들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철회되어야 한다. 물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 그런 지위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 자리에서 '어떤 삶을 살아내느냐'이지 그들이 그 자리에 간 것 자체는 아무 의미도 갖지 않는다. 또한 그들이 그 자리에서 살아내는 삶은 2천만 원대의 연봉을 받으면서 성경적인 삶을 살며 직장동료들에게 모범이 되는 성경적인 삶을 사는 삶보다 더 훌륭하거나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서 한 사람에게만 진짜 성경적 가치를 삶을 통해 전달해 줘도, 그 사람은 하나의 세상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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