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어렵다.
성경은 어렵다. 우리가 잘 모르는 지명과 사람들. 그리고 역사적인 사건들. 한국 역사도 헷갈리는데 내가 왜 남의 지역, 남의 나라, 내가 가보지도 않은 곳의 역사에 대해서 이렇게 읽어야 하는지 회의가 들 때도 있다. 그리고 성경에서 하고자 하는 얘기가 뭔지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은 이것이 경전이라고 생각하고 읽지만 성경은 해석을 통해 기독교인에게 중요한 가치와 그 지역과 시대적인 상황으로 준수하도록 했던 규칙이 섞여 있는데 이걸 분류해 내는 것이 보통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그래서 사실 종교개혁운동 이전에 일반인들이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한 천주교의 방침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한 역사, 문화적인 특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해석하면 잘못된 해석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말이다. 사실 이단이라는 것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기독교 계열의 이단이 유독 많다는 것은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고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이런 점에 비춰봤을 때 과연 성경을 읽어야만 하는가? 어디까지 읽어야 하고 왜 읽어야 하는가? 에 대해서 회의를 가진 적이 많다. 그리고 과연 이걸 어느 정도 읽어야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해도 가지 않는 것을 읽어봐야 뭐하겠나... 그래서 종교개혁 시기에 일부 신학자들은 성경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성경 읽기의 의미
사실 나는 성경을 읽는 것과 구원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하는 생각에 동의하는 편이다. 그 논리대로라면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단 말인가? 일정 수준 이상의 지적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도? 삶에 치여서 글 한자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은? 성경을 읽는 것과 구원을 일치시키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사실 종교개혁 이전에 천주교에서 신부들이 다른 사람에 비해서 우위에 있다고 믿었던 것과 같은 위치에 서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나는 더 많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경은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성경을 읽는 과정과 그 시간 자체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잘 이해가 안돼도 일단 삶에 대해서 생각하고, 자신이 믿는 절대자와의 소통을 위해서 시간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단 것이다. 연애를 할 때 연인을 만나서 무엇을 하는지보다 그 사람과 만나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하듯이, 성경을 읽는 것보다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기도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그 자체의 의미가 더 크단 것이다. 그리고 연애를 할 때 자주 보고 자주 연락하면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닮아가듯이, 성경을 읽고 그런 시간을 갖는 것도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에서 마찬가지 효과를 낼 것이란 얘기다.
물론 성경을 더 깊게 공부하면 그 원리들이나 기독교의 핵심적인 가치들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타고난 재능이 다르고 그렇게 파고들지 못하게 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그런 점을 감안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꼭 그렇게 파고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구분해서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것 자체는 의미가 있고 반드시 필요하단 것이다. 말씀과 기도가 결국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이 아닌가?
한국교회의 문제점
그런데 한국교회들 중 상당수의 문제점은 '몇 독'을 했는지를 그렇게 시간을 구분해서 나가는 것 자체보다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몇 번을 읽었는지 자체가 중요하게 되면 그 읽는 것 자체가 하나님과 소통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보다 더 중요해지는데도 말이다. 사실 공부할 때 책을 펴놓고 오래 앉아있었다고 해서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성경을 몇 번 읽었던지 그 말씀을 더 아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성경을 몇 번 읽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읽었는지, 그리고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을 보냈는지에 대한 것이다. 책을 읽는 것 자체보다도 책을 읽고 그에 대해서 얼마나 곱씹고 생각해서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었는지가 더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하루에 한 줄을 읽은 사람이 하루에 100장을 읽은 사람보다도 더 통찰력이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만큼 그 한 줄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그와 관련된 것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에서는 여전히 성경일독, 혹은 성경을 몇 번 읽었는지를 기준으로 신앙과 믿음의 서열을 매기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사람들의 자기의 로 작용하여 오히려 성경의 가르침과 더 멀어진 마음과 삶의 방식을 갖게 하기도 한다. 이제는 왜, 그리고 어떻게 성경을 읽는 것이 중요한지에 대한 기준이 제대로 세워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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