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아는 것과 나이
'쪼끄만한게 무슨 사랑을 안다고'
어린아이들이 여자친구, 남자친구 얘기를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아닐까? 그런데 아이들은 정말로 어리기 때문에 사랑을 모를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어쩌면 아이들이 오히려 진실과 진리에 대해서 어른들보다 많이 알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린아이들이 여자친구, 남자친구 얘기를 하면서 누군가와 어울리는 모습을 하나, 하나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으면 아주 어린아이들은 상대의 집안, 경제력, 외모 등에 대해서 따지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것을 그 상대에게 기꺼이 내주는 모습도. 그게 사랑이 아니면, 무엇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아니 어쩌면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문제를 꼽으라고 한다면 난 그와 같이 순수하게 누군가를 사랑하는 나이가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집안, 경제력, 외모 등을 놓고 누군가를 판단하고 그것을 사랑 또는 연애라고 부르는 틀 안에 가져오는 것은 보통 사춘기를 겪는 중학생 때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경향이 초등학생도 아닌 유치원생들에게서도 보이는 듯하다. 이는 과거에는 보통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부터 생기기 시작했던 성적인 문제들이 초등학생들 간에도 발생한다는 것이 보여준다. 사랑이라고 이름 붙여진 감정들과 연애에서 성적인 측면이 더 많이 부각되고 때로는 그것이 사랑과 연애와 동의어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그에 대한 내용, 정보와 콘텐츠를 더 어렸을 때부터 접하게 된 영향이 클 것이다.
그러한 현상을 우리나라를 넘어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그러한 사고체계와 그러한 방식의 연애를 어렸을 때 인지할수록 그 사람이 그쪽으로 편향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축적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게 되기 때문에 다섯 살 때부터 집안, 경제력, 그리고 외모와 같은 '사회적인 요소'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에 따른 자신의 기준이 성립되어 버리면 그 사람은 중학교 때 그런 요소의 영향을 받은 사람보다 그 영향을 받은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서 그러한 사고방식을 더 견고하게 하게 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기준의 영향을 받는 연령대가 사회 전반적으로 낮아진다는 것은, 그렇게 사고하는 사람이 증가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누가 문제인가?
그렇다면 아이들이 그렇게 사고하는 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그건 아이들이 아니라 부모의 잘못이 가장 크다. 이는 나이가 들고 사회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갖추게 되는 사고체계나 가치관은 친구, 선생님 등의 영향을 받게 되지만 어렸을 때 아이가 영향을 받는 건 그 부모의 사고체계와 가치의 영향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집안, 경제력 등에 대해서 어떻게 인지를 하겠나? 그리고 위에서 내가 외모를 사회적인 요소에 포함시킨 것에 대해서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외모 자체는 사회적이지 않더라도 '외모에 대한 평가'는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외모를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은 분명히 사회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리고 아이들 역시 외모에 대한 평가는 부모의 기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실 장애인에 대한 시선, 외모지상주의적인 사회적 분위기 등은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의 탓이다. 어른 중에서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면 부모의 잘못이다. 사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쪼끄만한게 무슨 사랑을 안다고?'라는 말을 하는 부모나 어른들을 보면 나는 역으로 '당신은 사랑을 얼마나 알기에 그런 말을 하는가?'라고 물어보고 싶다. 그들이 그렇게 사랑을 잘 알고 잘 해서, 지금 결혼한 배우자와 매우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는지, 본인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본인이 성공은 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런 어른들의 지적은 마치 사업을 수십 차례 벌였지만 다 망한 사람이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사업할 줄 모르면 시작하지를 말아. 내가 사업을 많이 해봐서 알아'라고 하는 조언과 얼마나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은 이 땅에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성향을 갖고 태어나기는 하지만, 그 이후에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그 경험의 영향도 받으면서 사고체계, 가치관 등을 형성하면서 성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들 중에서도 어렸을 때 한 경험의 영향이 나이가 들어서 하는 경험보다 훨씬 영향이 크다. 모든 영화와 드라마들이 등장인물들의 어린 시절을 어느 순간엔가는 조명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인간은 이렇게 자신이 사회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그 영향을 받으면서 사는 존재다. 그리고 그러한 영향은 당연히 인간이 하는 '사랑'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어른이라고, 나이가 더 들었다고 꼭 사랑을 더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연애는 경험으로 할 수 있지만 사랑은 경험으로 하는 게 아니지 않나? 그렇다면 사랑은 사실 어린아이들이 지식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더 잘 아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의 순환고리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간에게는 어린아이와 같이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다. 이는 결혼하고 가정을 꾸려서 아이를 갖게 되면, 사람들은 그 아이를 통해서 정말 순수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이를 돌보면서 그 아이의 마음과 행동을 보는 과정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되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순수했던 시절을 돌아보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부터 자신이 지금까지 추구해왔던 것의 의미, 자신이 했던 사랑을 돌아보면 어떤 게 의미가 있고 의미가 없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아이를 갖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사실 개인이 사랑을 회복할 기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사회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은, 어렸을 때부터 접해 온 사고체계와 가치관이 굳어버린 사람들은 그 기회를 자신의 발로 스스로 차 버리는 경우가 많다. 아니 대부분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쪼끄만한게 뭘 안다고'라고 아이를 무시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아이의 순수함은 다시 그렇게 잘못 물들어버린 어른들의 영향으로 얼룩지기 시작하고, 진정한 의미의 사랑은 그때부터 다시 희석되고 인간에게 어려운 것으로 전락하기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더 가져야 하고, 경쟁해야 하고, 남을 이겨야 한다는 것은 사실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아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학습되는 게 아닌가?
그렇게 돌고 돌다가 대부분 사람들은 죽음을 눈 앞에 두고 나서, 혹은 사회적으로 힘과 영향력을 상실하고 나서야 다시 그 아이의 습성을 일부 회복하는 경우가 많다.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때로는 더 순수하고 맑은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때 회복된 그들 안의 사랑은 많은 경우에 세상에서 온갖 풍파를 다 겪고, 한 때 잘 나갔던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모든 것이 한 때임을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찾아오는 경우가 많고, 그것도 그나마 그 과정에서 무너지고 망가지지 않은 이들에게만 허락된다.
어떤 이들은 사랑을 과정 또는 수단이라고 생각하지만 난 사랑 자체가 사실은 삶의 목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 필요로 하는 것도, 세상을 떠날 때 인간에게 남는 것도 사랑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돈, 사회적 성공, 명예, 권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첫 번째로 인류의 99.9%는 자신의 기준에 그런 것에 대한 목표를 달성해도 그게 기록에 남겨지지도 않을 것이며, 두 번째로 그에 대한 평가는 사실 다른 사람에 의해서 이뤄지기 때문에 자신이 아무리 잘해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수령하지 못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리고 인간은 그런 것이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다. 사실 우리는 대부분이 그런 것들을 갖지 못하고 살아가지 않나? 하지만 사람은 누구든지 사랑이 필요하고, 우리 삶의 많은 문제들은 사랑하지 못해서 발생한다. 그리고 사랑이 삶의 목적이 되면,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우리가 사랑을 알기 위해, 그리고 찾기 위해 노력만 한다면 말이다. 우리가 사랑을 알아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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