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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사랑

지나간 사랑에 대한 예의

난 과거를 잘 잊는다.

내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몰라도 난 내가 과거에 만났던 연인에 대한 나쁜 기억이 별로 없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헤어지고 나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의 이름도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때도 있을 정도로,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과의 일들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모든 것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사람과 갔던 카페, 그 사람과의 첫 키스 장소, 그 사람에게 고백을 했던 장소를 지나갈 때면 그때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살아나기는 한다. 하지만 그런 기억이 난다고 해서 짜증이 나지는 않는다. 그저 피식 웃고 만다. '그땐 그랬지'라는 생각과 함께.

내게는 그렇게,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이 나쁘게 기억되지 않는다. 그 사람들과 만날 때 즐거웠던 기억, 고마웠던 기억들은 가끔씩, 아주 매우 가끔씩 생각이 나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을 그리워한다거나, 다시 만나고 싶다거나, 헤어진 것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물론 상태가 정말 극도로 안 좋아지고 극도로 외로워지면 아주, 매우, 가끔, 잠시, 그런 생각이 스쳐가게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마저도 조금만 상태가 회복되면 헤어졌던 이유가 생각이 나며 나와는 인연이 아니었음을 다시 깨달을 뿐이다.

어쩌면 내가 내 연인의 과거를 고마워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도 사랑이었다.

내가 과거 연애를 이렇게 기억하는 것은, 그들도 내겐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와 맞지 않는 면이 있어서 헤어진 것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저 운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의도적으로 좋은 면만 기억에 남겨둬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과거의 연애는 그렇게 기억하는 것이 내 과거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내가 했던 사랑을 부정하고, 내가 만났던 사람을 비난한다면 이는 결국 내 얼굴에 내가 침을 뱉는 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마음을 줬고, 내가 선택을 한 사람이었고 사랑이었는데 내가 그 사람 또는 그 연애를 비난하거나 폄하하는 것은 결국 나를 비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와 만났던 이들 중 상당수,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정을 꾸렸다. (이런 얘기들은 이상하게 꼭 건너서 들려온다.) 그녀들과 평생을 살기로 마음을 먹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사람들이 그만큼 훌륭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녀들과 내가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을 뿐이다. 우린 달랐던 것이지 누구도 틀렸던 것은 아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과거를 이렇게 기억하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다음 사랑을, 다음 연애를 기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연애를, 사랑을 또는 연인을 저주하거나 비난하는 사람들이 사실 조금 신기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과거를 저렇게 기억한다면, 앞으로의 연애가, 만남이, 사랑이 기대가 될까? 그렇게나 아팠던, 힘들었던,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을 고스런히 남겨두고 있다면 말이다. 그 사람들 역시 나와 다를 뿐 틀린 것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서 난 솔직히 그런 분들이 신기하다.

헤어짐에는, 이별을 하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그리고 어느 헤어짐과 이별도 아름답기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연애도 힘들거나 고통스럽기만 할 수도 없다. 만약 그랬던 연애가 있었다면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기도 하다. 아니면 당신이 그 사랑의 행복하고 아름웠던 순간들을 삭제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삭제했다고 믿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억이라는 창고에 저장해 둘 기억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는 문제다.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도 없지만 100% 악한 사람도 없다. 당신이 누군가와 일단 만났다면 그 사람이 최소한 한 가지는 괜찮은 혹은 좋은 면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 기억만, 추억만 남겨두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은 어떨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내 지나간 사랑에 대한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