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짐, 상대의 짐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인생의 짐을 지고 산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으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인생의 짐'에 대한 것이다. 그 길을 걸으며 등에 느껴지는 가방의 무게에 우리가 걷는 인생길에 우리 등에 얼마나 많은 짐을 지고 가는 지를 절실하게 깨닫는다. 신기한 것은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그 짐의 무게가 덜하게 느껴지고, 그 무게에 내 몸이 적응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짐을 지고 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조금씩 더 무거운 짐을 질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생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능력에도 순간순간 기복이 있다는 데 있다. 그 짐을 지고 오르막을 걷게 되거나, 걷다가 웅덩이에 빠질 때면 같은 짐도 더 무겁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연애를 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 인생에 오르막이 없거나, 우리가 웅덩이에 빠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물론 연애를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러한 상황에 처하는 것도 아니다.
같이 길을 걸어간다는 것.
그렇게 우리 인생에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때 어떤 사람은 그 상황에 대해서 연인에게 모든 것을 탓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자신이 짐을 혼자 짊어진 상태로 혼자서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기도 한다.
두 가지 모두 바람직한 결정은 아니다. 연애는 우리 현실의' 일부'이기에 '연애를 하기 때문에' 무엇인가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연애를 '잘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은 있지만 말이다. 예를 들면 연애를 시작하면서 연애 대신 본인이 뭔가를 소홀히 하거나, 상대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을 들어주려다가 다른 부분이 망가지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냉정하게 얘기해서 본인이 선택한 것이다. 상대가 본인을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고 말이다. 상대가 무리한 요구를 할 때는 솔직하게, 본인이 하기 힘들거나 하고 싶지 않은 일임을 최대한 갈등이 덜 일어나는 방법으로 나이스 하게 설명을 해야 한다. (본인에게 무리가 가는 일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하게 되면 상대는 그런 무리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반복적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고민을 해보고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을 하는 것은 맞지만, 본인에게 정말 무리가 가는 것이거나, 하기 힘든 일이라면 그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이를 상대에게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상대의 다름도 존중하면서.) 즉, 상대가 요구했기 때문에 본인이 그것을 하려다가 본인의 일상이 망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상대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다 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연애에서는 상대만큼이나 나도 중요하기에.
그리고 자신의 모든 상황을 혼자서 해결하려는 것 역시 바람직한 결정은 아니다. 물론 궁극적으로,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본인이 처한 상황은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으로 인해 오는 감정적 흔들림과 불안감, 무력감 등의 감정은 연인과 나줘질 수 있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짐을 같이 지고 갈 줄도 알아야 하고 말이다. 사랑이 상대를 나 자신과 같이 아끼는 것이라면, 상대에게 사랑은 상대가 나를 본인만큼 아끼는 것이기도 하기에 우리는 상대도 자신에게 기댈만한 나무가 되어 줄 기회를 줘야 한다. (물론 개인적으로 결혼하기 전에 연인 간의 금전거래는 추천하지 않는다. 본인이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 아니라면. 금전거래를 요구하는 연인에게 끌려다니시는 일은 없기를...)
연애-짐을 나눠지는 연습기간
그렇게 짐을 '일부' 나눠준다는 것은 사실 고마운 것이다. 상대를 사랑한다면 상대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기에, 상대에게도 가볍지만은 않을 수 있는 짐을 나눠진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을 나눠질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상대를 믿고, 상대를 신뢰하며, 상대가 내 인생에 깊게 들어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물론 항상 징징대고 모든 걸 상대에게 던져놓는 사람도 있는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한다는 것은 너무나 이기적인 게 아닐까 싶다. 상대도 연애를 하면서 본인의 짐을 지고 가고 있기에.)
그리고 상대가 내 짐을 같이 들어준다는 것 역시 고마운 것이다. 상대도 본인이 갖고 있는 인생의 짐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짐을 같이 들어주고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상대 짐을 내가 어느 정도 들어주고, 내 짐도 상대가 어느 정도 들어주면, 그 가는 길은 외롭지 않다는 장점은 있으면서 누구도 '더 많은 짐을 지고 가는 것은 아닌 것'이 된다.
그래서 내 짐을 일부 상대에게 맡길 줄 아는 것, 그리고 상대의 짐을 내가 일부 들어줄 줄 아는 것은 연애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연애를 하는 시간은 그런 연습을 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이 사람과 호흡을 평생 맞출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 서로가 서로에게 짐을 일부 맡기는 것이 편한 사람과 가정을 꾸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 짐을 맡기면서 미안해하기보다는 고마워하자. 그리고 그 짐을 같이 들어주는 것을 절대로 당연히 여기지도 말자. 사실 두 사람이 모두 그렇게만 생각할 수 있으면 싸울 일도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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