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까다롭다.
눈이 높지 않다고 항변도 많이 해봤고, 지금은 누군가가 눈이 높다고 하면 너무나도 뻔뻔스럽게 ' 높은게 아니야 까다로운거지'라고 반박한다. 그러면 상대는 황당해서 돌아가던지, 친한 사람은 니가 가진게 뭐 있다고 까다롭게 구냐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난 그에 굴하지 않고 다시 말한다. 난 까다롭다고 말이다.
물론 내가 까다롭다는게 자랑은 아니다. 이는 그만큼 내가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의 폭이 좁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조건을 274만가지를 나열해서 까다로운게 아니라 내 기준으로 '주관적인' 외모와 함께 다른 것들 2-3가지 정도에 대하여 나와 소통이 될만한 색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고, 지금까지 연애를 해 본 결과 그런 사람이 아니면 잠시 연애를 하다가도 결국 헤어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연애를 위한 연애를 하기 위해서 까다롭지 않을 생각은 여전히 없다.
이는 내가 더 이상 그저 연애를 많이, 다양한 사람과 하는 것이 연애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는 내게 맞혀주는 것이 덜 불편하고, 내가 큰 불편함 없이 맞혀줄 수 있는 사람과 만나고 싶기에, 그리고 가능하다면 너무 많은 연애를 거치지 않고 가정을 꾸리고 싶기에 이런 기준을 유지하는 듯하다는 것이다. 내가 20대 중후반만 되었어도 달랐을 것 같지만 말이다.
까다롭지 않을 이유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연애를 누구와 할 지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까다롭지 않을 이유가 없다. 까다롭지 않을 유일한 이유는 어쩌면 소개팅을 '많이'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세상 누구와도 사귀면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은 것은 너무나도 분명하고 객관적인 사실이고, 사람들이 연애를 하는 것은 더욱 행복하게 살기 위함이라면 자신이 그런 감정을 느낄 사람을 찾는데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까지 희생하면서 연애를 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물론 까다로움의 도가 지나친 사람이나 까다롭다 못해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매우 극히 드물게 존재하는 사람을 찾는 경우는 얘기가 조금 다르다. 예를 들자면 '과묵한데 웃긴 사람'은 그 사람이 한 번씩 던지는 농담이나 그의 일상적인 행동이 본인의 코드에서 웃겨야 하는데 이는 어떻게 뭔가를 찾기가 힘든 스타일이고, '진취적인데 성격이 부드러운 사람' 역시 진취적이면 보통 추진력이 있어서 강하다는 느낌을 주기가 쉽기 때문에 찾기가 쉽지 않으며, '객관적으로 이쁘지만 남자들의 이목은 끌지 않는 사람'은 말도 안되는 걸 요구하는 것이다. 이처럼 공존하기가 조금 많이 힘든 두 조건을 붙인 기준으로 누군가를 찾는 것은 까다로운 것을 넘어서 조금은 비현실, 혹은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모순되어 보이는 조건을 붙여서 말하는 사람들은 '객관적인 조건'이 아니라 그저 본인의 관점에서 주관적으로 그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 조건을 갖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최소한 다른 사람에게 그런 사람을 소개시켜달라는 말은 자제하는 것이 현명한 처세술이 아닐 수 있다. 누구도 당신의 눈으로 사람을 볼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위에 예시들 처럼 상호 모순이 되는 조건을 생각하는 사람은 '내가 웃고 싶을 때 웃겨 주고, 내가 말을 안하고 싶을 때는 과묵한 사람' 또는 '일상에서는 진취적이지만 나에게만큼은 항상 부드러운 사람'을 의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은 어찌보면 코드가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지만, 어찌 보면 결국 본인에게 모든 것을 맞추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어서 조금은 너무 자기중심적인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건 어쩔 수 없는 듯하다.
나는 내 연인이 까다로웠으면 좋겠다.
사랑에 까다롭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내가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말을 듣고 어느 후배는 입만 살았다고 했지만) '누가 될지 모르지만 내가 만나게 될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생각해 보자. 당신 연인의 친구들을 만났을 때 '얘가 정말 까다로워서 누구를 만날지 정말 궁금했다'고 하는 것이 좋겠나? 아니면 당신 연인이 만났던 사람들 얘기를 하면서 '그런데 얘는 솔직히 상대가 좋아하면 그냥 넘어가서 연인을 볼 때 전혀 까다롭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이 좋겠나? 나는 내 연인이 까다롭게 고르고, 고르고, 골라서 선택한 사람이고 싶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내 연인에게 만큼은 특별한 존재이고 싶지 않을까?
물론 본인이 까다롭다고 거리낌 없이 인정하고 다니면 (내 지인들이 그러하듯) 지인들이 집단적으로 그 사람과 가정을 같이 꾸릴 사람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부작용이 있을 수는 있기에, 그걸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 지는 본인이 결정해야 할 일일 것이지만 말이다.
이 모든 것에 예외가 있다면 그건 20대가 아닐까 싶다. 20대 만큼은 이렇게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온전히 사랑했으면 좋겠다. 어차피 나이가 들수록 머리로 생각하는 조건들은 생겨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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