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을 꿈꾸는 이유
스스로를 현실적 이상주의자로 분류한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그리고 공동체주의적 자유주의자라고도 생각한다. 두 가지 모두 이상을 목표로 하지만 현실의 한계는 인정한다는 요소를 갖고 있는 표현이다. 내 현실 속에서는 그 현실적 제약을 인정해야 하지만, 내 글에서만큼은 항상 이상을 말하고 싶다. 이상을 꿈꿔야, 우리네 삶이, 우리가 사는 사회가 그에 최대한 가까이 갈 수 있지 않겠나? 내가 계속해서 이상향을 떠올리는 것은 이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졌으면 좋겠고, 사람들이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기 때문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사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하고, 본 세계를 바탕으로 글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내가 쓴 글에 공감하는 사람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와는 상반된 경험을 했기 때문이리라.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며, 변수는 많다. 따라서 완벽하게 똑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은 없으며, 그에 따라 모든 글이 쓰여진 의도대로 해석되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 글에 완전히 동의해주기도 바라지 않지만, 별다른 근거나 이유 없이 반사적으로 '그건 아니야'라고 단호하게 반응한다면 나는 그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에게 분노하는 편이다. 어떤 사람의 말도 몇 초 정도는 듣고 그 의미를 파악해 줄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기에.
내가 세상을 바꿀 수도 없고,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도 없겠지만, 내가 정리한 생각의 파편들이 누군가에게 찰나의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가 글을 쓸 이유는 충분하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머리와 마음에 있던 물음표가 느낌표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가 글을 쓸 이유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나의 글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몽상가인 것은 아니다.
작은 것부터 변하는 세상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알면서도, 누군가의 하루도 바꿀 힘이 내게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분명하다. 일상의 작은 순간들의 변화가 모여 궁극적으로는 큰 변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누군가의 1초가 바뀌면, 그 1초의 기억에 남아 2초의 변화가 되고, 그 2초의 변화가 기억에 남아 3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글을 쓰고 이상을 얘기한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글을 쓰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은 큰 변화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에 수반되는 작은 변화가 있어야만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한다. 법과 제도를 아무리 잘 만들면 무엇하겠나? 그런 법과 제도가 만들어진 의도에 따라 그러한 원칙들을 준수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사회질서가 자리 잡지 않을까? 그래서 정치도, 행정도, 사법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틀에서 원칙을 준수하고 작은 것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의 기본은 교육을 통해 형성되기 때문에.
너무 큰 얘기로 들어가 버렸다. 다시 작은 얘기로 돌아가자면, 분명한 것은 큰 변화는 작은 변화들이 모여서 시작된단 것이다. 지금 내가 좋은 일 한 가지를 하는 것이, 원칙을 한 번 지키는 것이 물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한 두 번 하는 것이 습관이 되고, 그러한 습관은 내 삶의 영역과 접점이 있는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삶 속에서 작은 변화들이, 긍정적인 변화들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세상은 아름다워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진정한 유토피아
남북한이 대립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주의'라는 말을 무조건 적대시하는 경향이 지금도 있는 듯한데 사실 사회주의적 이상은 유토피아적인 것이다. 누가 더 열심히 일하든지 상관없이 딱 본인의 필요에 맞춰서 나눠 갖는 것. 그보다 더한 유토피아가 어디 있겠나? 문제는 인간의 본성이 그렇지 않다는 데 있으며 그것을 제도적으로 강제한다고 그것이 현실화되지는 않는다는데 있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더 일했다고 생각하면 더 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사실 자본주의가 인간의 본성에 가장 부합하는 제도이긴 하나, 그것이 완벽한 것도 아니고 가장 이상적인 것도 아니다.
진정한 유토피아는, 좋은 세상은 사회주의적 이상이 제도적으로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제도를 통해 재화가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생산되는 한편 더 가진 사람들이 덜 가진 사람들에게 기꺼이 나눠주고, 그걸 받은 사람은 고마워할 줄 아는 세상일 것이다. 사회주의가 제도가 아닌 사람들을 통해서 구현되는 사회 말이다.
안다. 그런 세상은 현실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한 사람만 배신하더라도 그러한 흐름은 끊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온 세상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내가 가진 한도 내에서, 내가 그에 가깝게 살 수 있다면, 그렇게 조금씩 주위를 돌아보는 것이 습관이 된다면 그 범위 내에서 그러한 유토피아'적'인 세상이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중요한 것은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과 상황이 허락하는 범주 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그러한 성격의 결정'을 하는 것일 테다. 그리고 그 '정도'는 객관적인 기준이 있다기보다 개인의 양심에 따라 주관적으로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역시나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결국은 '사람'이다.
아무리 법제도를 바꿔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그 안에서 꼼수를 부릴 사람은 어디에나, 언제나 존재한다. 좋은 세상은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아닌 그 사회 구성원인 '사람'이 변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그런 정치인이나 관료를 뽑을 것이고, 그렇다면 정치인이나 관료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그러한 '척'이라도 할 것이며, 그러한 '척'하는 것도 결국은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당신 옆에 있는 사람도, 이 세상에서 동등하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존재인 이유다. 변화는 결국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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