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나 유럽은 한국에 비해서 가족 중심적인 문화가 굉장히 많이 자리를 잡고 있다. 실제로 미국으로 이민을 간 대학 선배의 SNS에는 주기적으로 가족끼리 여행을 간 얘기들, 아이들과 놀이터에 있는 모습, 그리고 저녁을 6시에 집에서 가족과 같이 먹는 모습이 올라온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내 가정을 꾸린 후에는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과연 한국에서 그게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먼저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유럽, 정확히는 독일에 가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시내 한 가운데에 숙소가 있었음에도 도시가 금방 어두워졌다는 것이다. 워낙 가족 중심적인 문화가 발달해 있다보니, 사람들은 저녁에 굳이 밖에서 늦게까지 노는 경우가 많지 않고 가족과 저녁에 식사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독일의 밤은 참 어두웠다. 어떤 거리는 저녁에 혼자 다니기가 무서울 정도로. 그 때가 2006년 독일 월드컵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한국은 (요즘 조금씩 달리지고는 있지만) 많이 다르다. 직장 상사들은 회사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 가족을 위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일주일에 아이들 얼굴을 거의 못보는 현실이 과연 가족을 위한 것일까? 나만 하더라도 아버지의 얼굴은 아침 식사자리에서나 볼 수 있었고, 주말은 아버지께서 주무시는 날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내가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야구장도 자주 가고 캐치볼도 하겠다고 하셨다지만 아버지와 야구장은 손에 꼽을 정도로만 갔고 캐치볼을 한 기억은 없다. 이것이 정말 가족을 위한 삶일까?
안타깝게도 아직도 한국에서 많은 이들은 이것이 진정으로 가족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렇게 사는 것이 '돈'을 벌어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많다는데 있다. 사람은 자주 보고, 만나야 정도 들고 서로에 대해서 알게 되어가는데 한국과 같이 가족끼리 같이 보낼 시간이 없으면 그 '정'이 들 시간이 없다. 물론 돈을 벌어오는 부모 입장에서는 본인이 낳았고 계속 그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돈을 벌기에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고 '착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내고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갖는 지도 모르면서, 그걸 제3자에게서 돌려서 들으면서 과연 그것을 아이들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 과정이 '정'이 들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부모는 성인이니 그렇게 자녀를 알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부모를 알아가고 있는 것일까? 알아간다면 얼마나 알아가고 있는 것일까?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가족을 대하는 방식이 미국, 유럽과 다른 것은 역사적인 배경의 영향이 있을 것이다. 사실 유럽, 그것도 선진국에 속하는 국가들은 세계 1, 2차 대전을 겪긴 했지만 그것으로 인해 사회적인 시스템 자체가 붕괴한 적은 많지 않다. 그들이 일부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그것이 그들의 국가나 특정 집단의 존재 자체를 위협할 정도인 적은 많지 않았단 것이다.
반면에 한국은 역사적으로 항상 국가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그 존재를 위협받으면서 살아왔다. 사람들은 외부의 수많은 침입을 이겨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와 같이 침입이 많았던 것은 한반도에서 문화가 안정적으로 발전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단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에서 한반도에서는 항상 생존이 화두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은 가족 문화를 발전시킬 여유가 있었던 시기가 많지 않았다. 우리 조상들에게는 항상 생존이 화두였고, 그렇다보니 일단 먹고 살 것을 구해오는 것 자체가 가족을 위하는 일이었다. 가족끼리 시간을 같이 보내고, 놀이를 하고, 어울리는 것은 일부 양반들에게나 어울리는 사치였을 것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과 같은 물질적 풍요를 누렸던 적은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러한 문화가 만들어진 것을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그러다보니 우리나라에서 가족을 위하는 것은 가족이 먹고 사는데 필요한 것을 조달하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로 인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사실 많은 것이 돌아갈 수 있는데도 밖에서 (효율은 염두에 두지 않고)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이 여전히 가족을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한번쯤 멈춰서서 지금 이 시대에 무엇이 정말 가족을 위한 것인지. 무엇이 정말 가족을 사랑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왜 우리 가족을 대하듯이 대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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