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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말씀 묵상-2020년

열왕기하 13-15장 말씀 묵상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반복해서 그들의 악행과 악행을 행하지 않은 자들의 경우, 그들이 산당을 없애지 않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당에서 우상을 숭배한 내용이 나온다. 왜 그런걸까? 악행을 행한 자들이야 왕에 대한 기록을 그렇게 남겨놓는게 자연스럽고 당연한데 악행을 행하지 않은 자들에 대해서는 왜 그랬을까?

그건 그들이 개인으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쁘게 행하였어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해서 그렇다. 그들 자신은 선하게 살았을지 모르나 그들은 그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축하는데는 실패했다. 그들은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만을 바라봐야 한단 것을 알지 못했다.

즉, 열왕기하에 나와 있는 왕들의 기록 중에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행동을 한 왕들'은 세상적으로, 사회적으로는 좋은 왕이었지만 하나님의 기준에 완벽한, 하나님의 계획을 살아낸 왕들은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열왕기하에 연대기식으로 나와 있는 왕들의 기록은 사실 하나님의 기준에서는 모두 부족하고 실패한 왕들이었다. 그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의 사람들의 삶을 불행하지 않거나 좋은 경우 행복하게 만들었을지 몰라도 그들은 자신의 자손에게, 이 땅에 복음을 제대로 심지는 못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조상인 다윗처럼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삶을 살지는 못했고 잘 다스린 자들도 다른 종교와 우상을 인정하면서 타협하며 나갔다.

악한 왕들이 나온 것은 사실 그 결과다. 만약 누군가가 그 중간에 그 고리를 끊고 산당을 뒤집어 엎었다면, 하나님 앞에 온전히 사고 하나님 나라를 이 땅 위에 구축해 나갔다면 상황은 다를 수 있었다. 그 뒤에 나온 왕들도 하나님 앞에 순복했을 수도 있다. 수십, 수백년의 기록을 이렇게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사소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우리의 현재만 산다면 조금 세상의 것을 더 추구하고, 그저 남보다 조금 더 선한 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은 열왕기하에 나오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쁘게 행한 자들이 되겠지. 하지만 기독교인은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기독교인은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쁘게 살면서 세상적인 것들을 자신의 마음에 하나도 두지 않기 위해서 매일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 마음에 '에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그래'라고 드는 부분과 '아니 인간인데 이런 욕심은 당연히 나자'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들은 사실 우리의 산당일지도 모른다. 궁핍하게 살아야 한단 것이 아니다. 청빈론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 다 맡길 줄 알아야 한단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밖이 아니라 속이고, 마음이다. 우리가 같은 일을 하더라도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가 핵심이다. 하나님께는 그게 가장 중요하다. [산당]은 왕들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 앞에 있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우리 마음의 산당에는 무엇이 있나? 우린 그 산당을 세우지 않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