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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말씀 묵상-2020년

열왕기하 19-21장 말씀 묵상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김삼환 목사가 계속 생각났다. 난 어린 시절에 명성교회에 다녔고, 특별 새벽집회 때는 강대상에 올라가 앉아 있다가 내려오면서 그와 악수하는게 목표였다. 그러고 나면 마치 내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듯한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김삼환 목사가 처음부터 이상했을까? 하나님이 아니라 본인이 중심이 되었고, 하나님보다 세상의 방법과 요령에 더 초점을 맞췄을까? 아니라고 단호하게 얘기할 수 있다. 그는 아주 작게, 힘들게 교회를 시작했던 사람이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했을 것이고, 그런 그의 안에 있는 힘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사람을 자신을 주위로 끌어 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변했다. 영향력이 커지면서 변질되었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부끄러움이 되었다. 물론, 그가 그렇게 되고도 멀쩡히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는 것은 한국교회가 그만큼 변질되어 있기 때문이기는 하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김삼환 목사가 기여한 부분도 적지 않다. 그는 그만큼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를 비판하는 글은 맞지만 그가 악하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그럴 수 있다. 하나님 안에서 한 두가지가 풀리기 시작하면 자신도 모르게 오만하기 시작하고 자아가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자신 안에 있던 하나님을 밀어낸다. 이런 작업은 하루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옷이 이슬에 젖어가듯이 조금씩, 조금씩 일어나는 일이다. 

바울이 나를 매일 십자가 앞에 못 박아야 한다고 한 것은 그 때문이다. 매일 나를 다시 하나님 앞에 끌어다 놓지 않으면 사람은 반드시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 앞에서 떠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과 마찬가지의 모습으로 있으면서 자신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착각하고, 자신을 그렇게 포장하기 시작할 수 있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 아니, 인간은 누구나 그럴 것이다. 

히스기야를 비판하고 판단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 사람들은 예수님보다 히스기야에 가까운 순간들을 살아내는 경우가 더 많다. 그의 행동과 결정은 비판해야 하지만, 그것이 그저 그를 판단하는데서 머물로서는 안된다. 히스기야가 내 거울이 되어야 하고, 내가 내 자신을 매일 십자가 앞에 못박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