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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결혼

비혼

멍하니 앉아있다.

제목을 쓰고 모니터를 보며 한참을 앉아있었다. 남의 일이라고 항상 생각했던 두 글자가 하얀 모니터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을 보니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는  비혼이라는 것을 선택하지는 말자는 글을 쓰려고 했는데 두 글자를 보고 있노라니 내 처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하지 못하는 것일까? 비혼을 선언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안'하는 것일까 아니면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못'하는 것일까? 두 글자를 멍하니 보면서 내 통장 잔고를 떠올려보니 나 역시 비혼을 선택해야 하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가슴이 시리도록 파고들었다. 그리고 아팠다. 때로는 상황에 떠밀려서, 때로는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찾아 헤매고 헤매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 끝에서 결혼을 하지 못하는 것을 사실은 안 하는 것이라고 선언을 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는 내 상황이 갑자기 처량하게 느껴졌다.

축의금.

비혼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정말 가슴 아팠던 부분은 축의금에 대한 내용이었다. 결혼을 하게 된다면, 20대 때부터 상대만 괜찮다면 돈 많이 안 들이고 정말 조촐하게 가족이랑 정말 친한 친구들만 불러서 하고 축의금은 받지 않고 싶었기 때문에 사실 축의금을 '회수'하기 위해 비혼식을 한다는 것이 가슴이 아팠다. 그렇다면 축의금을 내는 것도 결국은 언젠가 다시 회수하기 위한 것이 주된 목적이었단 말인가? 물론 축의금을 많이 낸 사람들이 '본전' 생각나는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가 사는 사회가 너무 삭막하게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축의금과 결혼식에 대한 내 개인적인 주관이 강하게 영향을 미친 것인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축의금 생각을 하게 될 결혼식은 가지도 않고, 정말 마음으로 축하해주고 축의금 생각이 나지 않을 결혼식만 가기 때문에 사실 나는 애초에 축의금에 대한 본전 생각을 할 일이 없기에. 물론, 가면 축의금 생각이 나서 밥은 꼭 챙겨 먹고 오지만 나는 그런 기준으로 결혼식을 가고, 그런 기준으로 청첩장을 받다보니 축의금에 대한 본전 생각을 할 이유가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뭔가 우리 사회가 축의금 또한 강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 본래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 초기에 돈이 드니까, 그리고 축하한다는 의미에서 서로 돕자고 시작된 문화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어느 순간부턴가 결혼식이 축의금 장사가 되어버린 듯해서, 그게 안타깝다.

비혼.

결혼을 하지 않기로 선택한다는 것. 일과 가정을 선택하라면 당연히 가정을 선택할 내게 비혼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가슴이 아픈 단어다. 스스로를 비혼주의자라고 말을 하는 사람들도 앞에서는 쿨한 모습을 보이지만 홀로 있는 어느 순간에는 '그런데 정말 내 인연은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들도 인연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가정을 꾸리고 싶지 않을까? 그것이 사실 그들 깊은 곳에 있는 진심인데 현실의 무게가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가가 만들어진 것은 자연상태보다 모든 사람들이 나은 생활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함인데 어쩌다 우리는 '비혼'에 대해서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게 되어버린 것일까? 이렇게 길게 글을 써 내려간 지금도, 비혼이라는 두 글자에 나는 또다시 키보드를 멈추고 멍하니 앉아있게 된다.

그리고 아프다.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대한민국이. 그래도 세상이 다 내게 등을 돌려도 내 편이 되어줄 한 사람은 있는게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나는 비혼주의자는 못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