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통과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께 원인을 묻기보다 원망하기를 빨리 한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119편에서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한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진정한 1순위였던 것이다. 그에게는 자신의 안위보다 하나님을 더 알고 그의 율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했다.
우리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속에서 과연 그런 자세로 살고 있을까? 우린 하나님을 더 아는 것이 항상 우선순위에서 위에 있을까? 하나님이 항상 우선일까?
무엇을 하더라도 내가 하나님을 더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이 최우선인 사람은 현재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본인 개인의 감정과 생각을 이겨내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시편의 고백들은, 고통과 아픔 속에서 쓰여진 시편의 고백들은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그걸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100% 그렇게 살아내지 못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발버둥치며 노력은 해야 하는게 아닐까? 그게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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