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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연애

고백할 때의 마음가짐에 대하여

그랬던 적이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할 때 '상대가 날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마음을 갖고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앓던 시절이 말이다.

소개팅으로 만난 사이야 어느 정도는 만남을 갖는 것을 전제로 하기에 상대가 날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 2번째, 3번째 만남을 갖지 않을 것이고, 만남이 이어진다는 것은 상대도 어느 정도 이상의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서로 공식적으로 만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상대를 학교, 회사, 모임 등에서 만나서 호감이 생긴 후에 그 사람에게 나의 마음을 솔직하게 내놓는 과정은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도 쉽지 않다. 이는 상대와 1대 1로 밥을 같이 먹고 영화를 볼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상대도 내게 호감이 있다고 할 순 없고, 상대에게 내가 호감이 있음을 말하고 나서의 후폭풍이 걱정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어렸을 때 최대한 상대에게 고백을 하지 않을 이유를 찾았고, 때로는 그러한 노력(?) 끝에 나 자신을 설득시키는 데 성공했었다. 하지만 그러한 이성의 긴장감을 항상 잡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결국에는 감정이 다른 것들을 모두 잡아먹고, 난 종종 '갑자기 고백하는 애'가 되고는 했다.

그럴 때 상대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을 때 내게 돌아온 대답들은 '정말 몰랐다'라던지, '왜 고백을 했냐'는 말인데, 전자는 그럴 수도 있다 하더라도 후자는 조금, 아니 조금 많이 섭섭했다. 상대가 내게 같은 마음을 갖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이상 친한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고백했냐는 말을 들으면 그 말은 참 섭섭하더라. 물론, 그 말은 '이렇게 되면 어색해서 우리가 예전 같이 가깝게 지내지 못하잖아'라는 마음에서 나온 말임을 알지만, 그 말은 반대로 해석하면 '네가 조금 어색하고 힘들어도 우리 사이가 그냥 좋게, 좋게 유지될 수 있게 말하지 말지 그랬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 말이 아프고, 때로는 이기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고백을 받았을 때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누군가가 고백을 하면 날 그렇게 생각해준 것이 항상 고마웠고, 그 시점에 나의 마음이 같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내게 고백했던 사람들 중에는 이상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사실 나 역시 저 사람과 만나면 어떨지를 한 번 이상은 생각해 봤기에 고맙고, 미안해지더라. 그래서 난 고맙고, 미안하다고만 말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나도 당신에게 호감은 있었음을, 하지만 마음이 열리지 않는 부분이 이러저러한 면에서 있었음을 최대한 정중하게 얘기했다. 단호하면서도 상처를 덜 주기 위해 노력하면서.

나이가 들면서 고백할 때 마음이 조금은 많이 달라졌다. 어렸을 때는 정말 끊임없이 생각을 하다 상대가 내 마음을 받아줬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고백했지만, 이젠 상대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상대에 대한 마음이 내가 누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을 때 내 마음을 상대에게 전하기 위해 고백을 한다. 그리고 상대가 지금, 이 시점에 내 마음과 같지 않을 수 있음을, 아니 그렇지 않을 확률이 낮지 않을 수 있음을 각오하고 고백을 한다. 살다 보니 그렇더라. 소개팅이 아닌 이상 두 사람이 같은 시기에 같은 마음이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더라. 그래서 그렇게 각오를 한다.

'그렇다면 그건 폭력이 아니냐'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맞다. 그럴 수 있다. 내가 고백을 하고 상대에게 나와 만나줄 것을 강요하고, 상대가 불편해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상대를 소유하기 위한 연락을 하면 그건 폭력이다. 그런데 반대로 상대의 마음을 분명히 모르는 상황에서 혼자 무조건 끙끙 앓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폭력적이지 않나?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난 상대에게 내 마음을 최대한 부드럽게, 어떤 면이 내가 이 얘기를 꺼내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솔직하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나는 '승률'은 생각하지 않고 상대가 갖고 있는 것과 그러하지 못한 것을 내가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그 모든 것을 내가 품어줄 수 있을지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보고, 내 감정과 마음을 더 이상 누르기가 힘들 정도로 그것이 커졌거나 상대가 확실히 내게 호감이 있다고 느껴질 때 난 상대에게 내 마음을 꺼내놓는다. 다만 상대를 정말 좋아한다던가, 사랑한다던가, 잠을 이루지 못했다던가, 너무 힘들었다는 식의 말은 하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는 편인데, 이는 그런 말이 상대의 마음을 살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그런 말은 상대에게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다 내 안에 있는 욕심이 드러날 때도 있겠지만...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은, 상대의 마음이 지금 나의 마음과 같지 않더라도 그 고백으로 인해 상대가 본인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람인지를 알게 해 줬으면 좋겠단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바람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어느 순간부터 진짜 사랑은 상대를 소유하려 하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를 사랑하는 그 감정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상대를 정말 소중하게 여기고 아낀다면, 상대가 나로 인해 부담스럽거나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함이 생기다 보니 그렇게 하게 되더라.

그렇게 해서 상대가 나와 마음이 같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이후는 꽤나 힘이 든다. 이는 상대에게 마음이 있는 상황에선 나로 인해 상대가 힘들거나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단 마음에 내가 힘든 것을, 내 마음을 상대에게 티 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본인이 같은 마음이 아님을 미안해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 지를 본인이 알기 때문은 아닐까?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해서, 상대에 대한 마음이 엄청나게 커졌다가도 상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상대와 일정기간 동안 거리가 생기고 내 생활이 다른 것들로 채워지면 그 마음이 어느 순간서부턴가 사그라들더라. 그리고 나면 내가 호감을 가졌던 상대와 친구로 편하게 자리를 갖게 될 때도 있더라. 먼저 마음을 전한 사람이 자신은 괜찮음을 보여주면, 두 사람의 관계는 이전이랑 비슷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듯하다. 그 사람이 '저 사람을 [갖고] 싶다'는 마음만 갖고 있지 않다면.

그런 면도 있는 반면, 조금은 냉정한 측면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때때로 '인생에 어차피 남는 사람은 많지 않아'란 생각도 같이 하게 된다. 어렸을 때는 '고백을 했다가 친구로도 지내지 못하는 것 아냐?'란 두려움이 많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다 보니 어차피 평생 가게 될 친구는 어떻게든 친구로 남고 그런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더라. 또 내가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과 내가 평생 친구로 남게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게, 어렸을 때보다 조금은 덜 부담이 되는 면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때로는 한 사람이 마음을 표현한 것이 연인의 시작으로는 이어지지 않지만, 그 사람에 대한 상대의 호감의 시작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상대가 전혀 자신에게 그런 마음을 가진 줄을 모르고 있었다면, 그건 그 사람이 상대를 이성으로 여기고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인데, 인간이란 존재가 참으로 묘해서 상대가 정말 아니지 않은 이상 고백을 받고 나면 어떤 이들은 그때서야 상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상대가 이성으로 어떤 지를 고민해 보기도 하더라. 그 과정에서, 그제야 상대가 매력 있는 사람임을 발견하고 상대가 이성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이쯤 되면 이제 '상대의 마음이 같을까?'란 두려움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건 이 글의 결론과 마찬가지 마음으로 그 사람이 다가가 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당신을 정말 소중하게 여긴다면, 그 사람이 고백을 한 이후에는 당신을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괜찮은 척을 하느라 호감이 있는 티를 내지 않을 테니까.) 자신의 마음에 확신이 있다면, 자신이 알고 있는 상대에 대한 모든 것이 품어진다면 고백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만 그건 '그런 일이 어쩌다 보니 일어나는 것'이지, 그걸 목적으로 상대에게 고백을 해서는 안된다. 이는 그런 목적으로 고백을 하는 건 상대에게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긴가민가하는 시점에서의 고백은 정말 순수하게 그 마음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같은 마음이 아닌 상대는 그 순간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불편하고 어색할 수 있기에 그 마음을 헤아려주고 배려해야 한다. 상대를 사랑한다면, 좋아한다면 그렇게 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로 인해 힘들어한다면, 그렇지 않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진정으로 상대를 위하는 일이 아닐까?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마음이 같을 수 있는 게 가장 좋고, 행복한 결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누군가를 마음에 품고 사랑할 수 있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일이며 그 자체로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를 그 존재 자체로,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고백의 과정과 그 이후도 그러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악의 고백은 '내가 왜 안돼?'라는 식의 얘기와 상대의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다는데 그걸 설득하려는 시도를 계속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건 호감도, 좋아하는 것도, 사랑도 아니고 상대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에 불과하기에.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상대가 불편해할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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