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what the LORD says: I am against you. I will draw my sword from its scabbard and cut off from you both the righteous and the wicked. (에스겔 21장 3절)
에스겔은 그 내용만 보면 하나님이 너무 무자비하고, 사랑의 하나님이 맞으신가 싶을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무자비하신 것은 이미 너무 멀리간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은 하나님 안에 서 있는 백성들을 위해서, 그들을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죄인들을 엄하고, 분명하게 벌하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그들에게도 자비와 사랑으로 할 수 있지 않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는데, 하나님은 이미 자비와 사랑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넘치게 주신 상황이다. 하나님은 기회도 주셨고, 채찍질도 하셨으며, 당근을 주기도 하셨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점 타락해 갔고 하나님과 멀어져 갔다.
만약 하나님께서 인위적으로 그들을 돌리셨다면 그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지으신 창조의 원리에도 반하고, 인간에게 보장해 주신 자유의지에도 반하는 결정과 행동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은 인간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의사를 완전히 존중해 주는 것. 그게 사랑이 아닌가?
하나님은 또 역설적이게도 인간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을 억지로 돌이키지 않으신다. 사실 마음을 강제로 바꾸는 것과 벌하는 것 중에 어떤게 더 폭력적인가? 폭력은 겉으로, 신체에 가해지는 것이고 마음을 강제로 일정한 방향으로 트는 것은 그 사람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벌하기 전에 수도 없이 경고에 경고를 더하고 있다. 그냥 벌하신 것이 아니란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그런 기준에서는 사실 마음을 강제로 트는 것이 더 폭력적이지 않을까?
I will disperse you among the nations and scatter you through the countries; and I will put an end to your uncleanness. (에스겔 22장 15절)
디아스포라. 흩어짐.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흩을 수밖에 없었을까? 이는 그들이 함께 있으면 죄악을 반복해서 범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그래서 흩어야만 하셨다. 함께 있으면 죄악을 범하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이 다른 민족에게, 다른 족속에게 지배당하도록 하셨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당시에는 저주 같았던 그것이 과연 그들에게 단순히 저주였을까? 이스라엘 민족은 그렇게 전세계로 흩어졌고, 그들은 그 안에서 버텨내며 생존해 냈다.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을 더 바라보며. 그들은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더 마음에 깊게 새겼다. 그리고 그들은 전세계 곳곳에서 탁월한 결과들을 냈다.
아직 확실히,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히틀러의 유대민족에 대한 공격이 단순히 히틀러의 분노가 작용한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해 보고 싶다. 그 당시에 유대민족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나님은 왜 그들에게 그런 극단적인 상황을 허락하셨을까? 역사적인,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으로 해석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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