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 in everything, do to others what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for this sums up the Law and the Prophets. (마태복음 7장 12절)
기독교의 핵심이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대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 이걸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다른 사람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될 것이고, 그건 결국 사랑을 의미하지 않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바보라고 한다. 상대가 나를 배신하고, 등에 칼을 꽂을지도 모르는데 모든 사람에게, 항상 그렇게 대하라는 것은 결국 바보가 되라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렇게 살라고 한다. 바보처럼. 다른 사람이 내게 무엇을 하든지, 나는 그렇게 살아내라고 한다.
The centurion replied, 'Lord, I do not deserve to have you come under my roof. But just say the word, and my servant will be healed. For I myself am a man under authority, with soldiers under me. I tell this one, 'Go,' and he goes; and that one, 'Come,' and he comes. I say to my servant, 'Do this,' and he does it." When Jesus heard this, he was astonished and said to those following him, 'I tell you the truth, I have not found anyone in Israel with such great faith. (마태복음 8장 8-10절)
여기에 나오는 백부장은 물론이고 오늘 묵상 부분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아무 조건이나 이해하기 위한 노력 없이 맹목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신뢰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기적을 일으키신다. 그들은 기적 자체를 원했다기보다 자신의 상황에서 고통스러워했고, 그것을 벗어나고 싶어했다. 그들에게 일어난 기적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손에 쥐어주고 더 부자게 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고통에서, 누가봐도 고통인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었다.
혹자는 나도 고통스러운데 왜 나에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냐고 할지 모르는데, 우린 그 고통이 정말로 감당하기 힘들고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욕심과 욕망이 채워지지 않아서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욕심과 욕망이 충족되지 않아도 고통스러워하는 존재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면, 우린 기적을 일으킴 받은 사람들도 상당기간 고통스러워했다는 것을 우린 또한 기다려야 한다. 그들은 예수님께 맹목적으로 손을 내밀 정도로, 뭐라도 잡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나만 그런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니란 것이다.
그런 고통을 왜 겪게 하느냐고 사람들은 많이 묻고, 나도 그런 물음을 수도 없이 수천번도 더 던졌다. 나 같은 경우, 사실 내 욕심과 욕망에 사로 잡혀 그걸 잡지 못해서 고통스러웠고, 더 갖고 싶어서 고통스러웠다. 더 갖지 못해서. 그런데 그 과정을 겪으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힘들고 아픈만큼 다른 사람들의 상처와 아픔에 공감할 수 있단 것이다. 내가 아프고 힘들어보니 다른 사람들의 아픔도 알겠고, 상처에 쉽게 뭐라 못하겠더라.
상처받은 치유자라는 말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한 것만 온전히 안다. 그래서 치유자는 대부분 어떤 형태로든 상처를 받아봤던 사람들이다. 더 사랑하기 위해서, 더 많이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우린 힘든 시간을 버텨내야 하는데, 이게 또 내가 인위적으로 그러겠다고 해서 들어간다고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다. 이는 우리가 가장 힘든 것은 우리 마음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건 우리가 선택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허우적대며 아무것도 잡을 것이 없을 때, 내 자신도 믿지 못하겠고 모든 것이 불확실할 때, 인간은 그때서야 하나님을 제대로 보고 제대로 잡는다. 그리고 우리가 그럴 수 있는 것이 사실 사람에게 가장 큰 축복이다. 그렇게 믿는 것이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통스러웠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은 사실 과정인 것이다. 더 큰 축복, 은혜,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알기 위한 과정.
1달간 지옥훈련을 잘 버텨내면 10억, 아니 100억을 준다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그 시간을 버텨낼 것이다. 그런데 사실 100억이 어마어마한 돈이긴 하지만 돈은 한순간에 다 쓸수도 있다. 건물 하나, 집 하나 사고, 제대로 관리 안하면 1-2년 안에 그 100억을 다 날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한 평안, 하나님을 사랑하고 제대로 알게 되면 평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그리고 그 변화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을 맹목적으로, 상황과 무관하게 믿고, 신뢰하게 되는 변화 말이다. 그 과정은 누구에게도 쉬울 수 없고, 어쩌면 인간의 원죄의 가장 큰 결과물은 그걸 겪어야만 하나님을 알고 볼 수 있게 되는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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