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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문화

비전, 소명 그거 함부로 말하는거 아니다

비전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한국교회에서 비전이라는 말은 세상에서 말하는 인생목표, 그것도 때로는 적지 않은 경우 고지론적 인생목표를 강요하는 수단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내가 뭔가 대단한 것을, 뭔가 의미있는 것을 해야 할 것 같이 강요하는... '넌 비전이 뭐야?'라는 말... 그에 대해 '난 그런거 모르는데?'라거나 '아직은 모르겠어'라고 하면 그 사람은 왠지 뭔가 잘 모르고, 아직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질문은, 하면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비전, 소명에 대해 함부로 말하면 안된단 것은 그 때문이 아니다. 이는 우리는, 대부분 사람들은 죽기 직전까지 내가 왜 이 땅에 있는지, 하나님은 왜 나를 이 땅에 보내셨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 그때 마다 내가 이일을 하기 위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아닐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비전이나 소명이라고 말하는 것이 사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내 욕심, 욕구와 욕망에서 발현될 것을 수도 있다. 아니, 그럴 확률이 매우 높다.

그래서 비전, 소명에 대해 함부로 말하면 안된다. 때로는 그걸 말하는 것이 나를 잡아먹고, 내가 그 말에 구속되고,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그 안에 매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비전이 이거나, 내 소명이 이거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게 그때는 멋있어 보일 수 있지만, 그게 내게 독이 되어 내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내 욕구, 욕망과 욕심에 매몰되게 만들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경우가 대부분인 느낌이다.

그냥 '너는 뭐하고 싶어?' 라고 묻고, '이런이런거 해서 이런거 하고 싶어'라고 말하면 된다. 거기에 하나님을 왜 굳이 붙이는 걸까? 굳이 하나님을 붙이고 싶다면, 붙여야만 할 것 같다면 하나님께 묻고, 묻고,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돌아보고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는 길 같다면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이렇게 끌어가시는 것 같애' 정도의 말을 하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거기에 비전 같은 거창한 말을 붙일 필요는 없다.

굳이 쓰겠다면, 개인적으로는 비전보다는 소명이란 말을 더 좋아한다. 비전은 그 의미와 느낌상 내가 하려는 것의 느낌이 강하지만 소명은 하나님께 받은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소명, 하나님이 주신 소명. 이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을 의미하니까.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우린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왜 보내셨고,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를 죽기 직전에야, 그때 우리 인생 전반을 반추해 볼때야 알 수 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일이 내 생각에는 이 일을 하라고 하시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다른 목적을 때도 있다. 우리가 그 크신 분의 계획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교회 다니는 사람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 부르는 사람도 세상 사람과 똑같은 약점이 있고, 똑같은 욕구, 욕망과 욕심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비전, 소명이란 말을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신이 생각하기에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이라고 계속 말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이 아니라 그 일에 집착하고 매몰되게 된다.

'하나님이 이걸 하라고 하시는 건가? 이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인가? 이렇게 하라고 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입 밖에 낼 필요도 없고 자신이 그에 대한 확신을 가져서는 안된다. 일단 지금 그렇게 믿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가다보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길로 자연스럽게 인도하실텐데 굳이 그걸 왜 내 목표로 설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집착한단 말인가?

믿음은 모르고, 보이지 않아도 가는 것이다. 내 길을 내가 다 알고, 다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우린 시간이 지난 후에야 하나님의 진짜 뜻을 알 수 있다. 비전, 소명 이런 말. 함부로 쓰지 말자. 아니, 개인적으로는 쓰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입 밖으로, 공공연하게는. 본인 마음으로는 그렇게 믿을 수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