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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문화

한국교회와 돈

우리 아버지는 정년퇴직하실 때까지 회사를 다니신 평범한 회사원이셨다. 대학을 두 군데 붙어서 선택을 할 때도 아버지께서 사회생활을 하시면서 설움을 겪게 만들었던 임원들이 나온 대학에 내가 갔으면 하셨을 정도로 회사에서 치사하고 더러운 일도 많이 겪으셨고 말이다. 그런 아버지는 회사에서 할 말은 다하면서 사셨는데, 그러면서도 회사에서 처음으로 정년을 채우실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더 치열하게 일을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허점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서 임원이 되시지도 못했지만.

그렇게 평생을 살아오신 아버지는 굉장히 현실적인 분이시다. 사실 나도, 동생도 신학서적이나 신학자들이 쓴 책을 많이 읽었거나 읽는 편이고 그런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데 우리의 그러한 모습들이 어디에서 왔는지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우리 집은 굉장히 현실적이다. 그래서 신학적인 얘기, 가치에 대한 얘기를 할 때면 아버지는 '너희는 너무 거룩한 척을 하는 것 같아. 돈은 중요해, 중요하다고'라고 하시고는 한다.

돈의 의미

잘못된 말이 아니고, 당연한 말이다. 돈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현실을 떠나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몽상가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물론 돈은 중요하다. 그리고 많은 돈을 벌고, 가져서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게 갖는 장점도 많다. 그래서 돈 자체를 폄하하거나, 청빈함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은 사실 그렇게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돈이 중요하다는 것을 계속 강조하게 되면 우리의 삶과 생활이 돈에 매몰된다는데 문제가 있다. 돈이라는 것, 화폐라는 것은 분명 물물교환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돈을 계속해서 강조하다 보면 그 돈 자체가 목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즉, 돈 자체는 문제가 아닌데 돈과 돈을 인생의 우선순위에서 매우 높은 곳에 놓고 사는 삶 속에서 우리의 '마음'이 놓이게 되는 위치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현대사회에서, 그리고 심지어는 교회에서도 돈은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목회자들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대형교회를 세습하려는 이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학부 졸업생들이 졸업하고 나면 대기업을 선망하듯이 신학대학원에 진학하면서부터 대형교회에서 목회를 하기 위해 주요 학교의 신학대학원에만 지원하는 사람을 직접 보면서, 그런 사람들이 상당수 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스스로 목회자들의 '취업시장'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을 보고 이건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었다.

돈이 시험이고 저주일 수도

그런데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본디 예수님의 발걸음을 따라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면 돈이 많은 것은, 연봉이 높은 곳에 가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시험이고 저주일 수도 있다. 인간은 누구나 물질에 약하기 때문에 풍요로움 속에서 자신을 잃고, 돈이 목적으로 변하고, 하나님과 예수님은 살은 없고 뼈만 남은 상태로 살아가게 될 수도 있기에... 그렇게 된다면 과연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성경에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축복일까? 아니면 사탄의 시험일까?

그렇다고 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무조건 악하다는, 청빈함만을 강조하려는 것은 아니다. 물론 물질이 풍요롭게 주어지면 그것에 감사하고, 그것이 내 것이 아님을 고백하고 인지하며 그렇게 허락하신 것을 나누는 삶을 살면 되지 않겠나? 필요 이상의 사치는 지양하고 말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누군가는 또 호텔에서 밥 먹는 것은 안 되는 것이냐? 어느 정도 가격대까지가 괜찮은 것이냐고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기준이 천편일률적으로 제시될 수는 없다. 핵심은 나의 마음이지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경험하게 되는 사람은 보통, 정상적으로 그러한 물질을 소유하게 되기까지는 또 그만큼 많이 부딪히고 치이게 되는데 그런 사람은 또한 그러한 것을 해소할 통로가 필요하지 않겠나?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그것을 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소비 자체가 목적이고 우상인지, 아니면 그 사람의 상황에서 필요한 것인지 일 것이다.

예를 들면 연예인들의 경우 대중에 노출이 많이 되는 것을 통해서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만큼 완전히 프라이빗한 공간에서야, 자신을 알아보고 반응하는 사람들이 적은 곳에서야 온전한 쉼을 누릴 수 있을 터인데 그들이 그러한 쉼을 위해서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돈 버는 것 자체가, 그리고 그 돈으로 사고 먹고 쓰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면 그것은 비판받을 것일 뿐 아니라 비성경적인 삶이란 뜻이다.

돈에서 자유로운 삶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돈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기독교인은 풍요로울 때나, 가난할 때 감사하고 자족할 수 있어야 한단 것이다. 그리고 돈이 많을 때도 그 자체에 흥분하고 동요되고 부유해짐 자체로 감사할 것이 아니고, 그때도 그저 담담하게 허락하신 것에 감사하고 그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성경적일지를 고민하고 기도해야 한단 것이다.

말은 쉽지만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기독교인이라면 그러할 수 있도록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기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허락되었을 때도 그것에 취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내 인생의 목적이 되지 않기 위해 나의 마음을 다스리고 스스로를 계속 살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가난한 상황 속에서도 감사의 제목들을 찾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을 정죄하거나 판단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힘으로 그러한 완벽한 삶을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누구나 그렇게 흔들리며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가기 때문에. 우리는 기나긴 삶의 여정의 과정 중에 어딘가에 있을 뿐이기에. 다만, 이 글을 쓰면서 몇 년 전에 모교를 방문해서 교장선생님과 한 시간 반 동안 대화를 한 끝에 선생님께서 내게 해주셨던 말씀 한마디가 계속 생각난다.

'너는 참 부담스럽겠구나. 받은 게 많은 만큼 이 세상에 그만큼 돌려주고 가야 하잖니?'

교장선생님께서는 내가 받은 공부할 기회들과 직장및 경험에 대해서 하신 말씀이시지만,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항상 마음에 새기고 기억해야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