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sus replied, 'Moses permitted you to divorce your wives because your hearts were hard. But it was not this way from the beginning. I tell you that anyone who divorces his wife, except for marital unfaithfulness, and marries another woman commits adultery.' (마태복음 19장 8-9절)
이혼과 관련된 이 부분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이혼에 대한 언급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이혼을 통보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 없단 것이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먼저 이혼을 통보하는 것이 상상조차 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혼에 대한 성경의 입장은 그런 맥락에서 왜 허용되지 않았고 당시에 어떤 문화가 있기 때문이었는지를 고려해서 해석해야 한다. 무조건 이혼은 안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 말이다.
이혼을 자유롭게 편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단 것이 아니다. 율법 이면에 있는 원리와 가치를 고민하고,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그것을 구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단 것이다. 성경은 철저히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이 넘어서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무조건 참고 견디라는 것이 과연 성경적일까?
Jesus answered, 'If you want to be perfect, go, sell your possessions and give to the poor, and you will have treasure in heaven. Then come, follow me.'...Jesus looked at them and said, 'With man this is impossible, but with God all things are possible.' (마태복음 19장 21, 26절)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무엇을 하면 될지 묻는 청년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라고 한다. 이 말씀을 읽을 때는 항상 굳이 그래야 할까? 에 대한 생각이 많았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도 물리적으로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라는 것보다 그 이면에 있는 의미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 말씀은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로부터 온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비유다. 정말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부터 주어진 것이라면 우리는 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리지 못하나? 그건 결국 우리가 갖고 싶어하는, 우리의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걸 '현실적으로...'라면서 유예를 하거나 선을 긋는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을 1순위로 놓으라고 하신다. 그건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단 의미다.
하나님이 너무 잔인하고 과도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안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라는 부분만 보면 그럴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인간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먹일텐데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지 않겠냐고 하시지 않았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고 믿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신뢰가 100%라면, 모든 것을 내려놓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정말 그런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한다면.
'These men who were hired last worked only one hour,' they said, 'and you have made them equal to us who have borne the burden of the work and the heat of the day.' (마태복음 20장 12절)
이 비유 역시 항상 불편했다. '일한대로 받아야지'라는 생각에.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일꾼들은 본인이 받겠다고 한 대가를 받으면 되는 것 아닌가?
이 비유를 보면서 오늘은 항상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남이 나보다 많이 갖는 것을 질투하고 정당하지 못하다며 화를 내는 이면에는 어떤 마음이 있을까? 거기엔 본질적으로 내가 더 갖고 싶다는 욕심이 자리하고 있다. 정의롭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하다고 비판하지만 사실은 그런 말을 하는 말의 핵심에는 내가 더 갖고 싶은 마음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걸 정의, 공정으로 포장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약한 자들을 챙기셨다. 그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인력시장에 아직도 있을 때의 마음 고생은 누가 이해해줄 수 있을까? 일을 하던 사람들은 일을 할 때는 본인이 받을 수 있는 수입이 있어서 그나마 마음 편하게 일하지 않았을까? 그 시간 동안에 있는 마음의 불안함. 그게 대가라고는 왜 생각하지 못하는걸까?
Not so with you. Instead, whoever wants to become great among you must be your servant, and whoever wants to be first must be your slave-just as the Son of Man did not come to be served, but to serve, and to give his life as a ransom for many.' (마태복음 20장 26-28절)
사람들은 자신이 스스로 높아지려 하고, 그래서 싸운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할 때는 그들이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낮추면, 내가 높아지는 것을 발견한다. 만약 내가 가진게 있어서 그걸 티를 내고 드러내려 한다면 그 사람은 그것으로 인해 주목을 받기보다는 뒤에서 뜯어먹힐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내가 정말 뭔가 중요한 것을 갖고 있거나 능력이 있으면, 내가 내 자신을 낮춰도 인정받는다. 남들이 나를 높여준다. 핵심은 거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본질이지, 내 자신의 노력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세상에서 자신을 정말 드러내려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것을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졸부의 느낌이랄까? 이 비유가 갖는 의미가 작지 안핟.
Jesus entered the temple area and drove out all who were buying and selling there. He overturned the tables of the money changers and the benches of those selling doves. "It is written," he said to them, " 'My house will be called a house of prayer,' but you are making it a 'den of robbers.' " (마태복음 21장 12-13절)
예수님은 성전을 무조건 성전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 안에서 이뤄지는 일들, 그리고 그 이면에 있는 마음들을 보고 판단하셨다. 형식적으로 교회 건물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기독교인이 된 것도 아니고, 그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도 아니다. 핵심은 마음이다. 물론, 우린 사람의 마음을 판단할 수 없기에 그곳에서 드려지는 예배 자체에 대한 판단을 우리가 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님은 다 아신다. 하나님은 다 아신다.
Jesus replied, "I tell you the truth, if you have faith and do not doubt, not only can you do what was done to the fig tree, but also you can say to this mountain, 'Go, throw yourself into the sea,' and it will be done. If you believe, you will receive whatever you ask for in prayer.' (마태복음 21장 21-22절)
이 말씀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붙들고 기도할 때 쓰는 말씀일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22절만 인용할 것이 아니라 21절까지 봐야 한다. 'if you have faith and do not doubt'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사람들은 doubt에만 신경을 쓰지만 핵심에는 faith가 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제대로 된 믿음. 앞에서 깔아놓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이 전제되는 말씀이다.
이는 욕심이 없는, 하나님이 1순위인 믿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으로 구하는 것에 이 말씀을 적용한다. 성경은 그 지점에서부터 왜곡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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