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 Martha was distracted by all the preparations that had to be made. She came to him and asked, "Lord, don't you care that my sister has left me to do the work by myself? Tell her to help me!" 'Martha, Martha,' the Lord answered, 'you are worried and upset about many things, but only one thing is needed. Mary has chosen what is better, and it will not be taken away from her.' (누가복음 10장 40-42절)
세상적인 기준에서 봤을 때 마르다는 잘못한 것이 없다. 손님이 오셨을 때 함께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예수님의 기준은 다르셨다. 물론, 현실의 문제도 중요하다. 하지만 놓칠 수 없는 것, 더 중요한 것은 진리를 깨달아 아는 것이고, 그건 예수님과 함께 해야만 아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무엇이 핵심인지에 대해 항상 깨어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현실적인 것, 세상적인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선택지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더 급하고 중요한지는 세상적인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경의 기준에 따라 선택되어야 한다.
'So I say to you: Ask and it will be given to you; seek and you will find; knock and the door will be opened to you. For everyone who asks receives; he who seeks finds; and to him who knocks, the door will be opened. 'Which of you fathers, if your son asks for a fish, will give him a snake instead? Or if he asks for an egg, will give him a scorpion? If you then, though you are evil, know how to give good gifts to your children, how much more will your Father in heaven give the Holy Spirit to those who ask him!' (누가복음 11장 9-13절)
이 말씀은 가장 많이 오해받는 말씀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말씀을 요술방망이처럼 사용하려하는데, 이 말씀은 전후 맥락과 그 내용의 의미를 잘 살펴봐야 한다.
이 말씀은 우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하나님 안에서 우선순위가 바로 서지 않은 상태에서 요구하는 우리의 욕구, 욕망은 이 범위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리고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실 것이라 하지 않는다. '너희를 위해서 좋은 것'을 다 들어주실 것이라고 하신다. 어린 아이가 독을 먹겠다고 달라고 하면 아이에게 줄 부모가 있을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필요하고 좋은 것'은 우리가 구하면 줄 것이라고 하신다.
따라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무조건 다 주신다고 해석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이 모든 것의 전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그 안에 거하는 것이다.
Then the Lord said to him, 'Now then, you Pharisees clean the outside of the cup and dish, but inside you are full of greed and wickedness. You foolish people! Did not the one who made the outside make the inside also? But give what is inside the dish to the poor, and everything will be clean for you. (누가복음 11장 39-41절)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여전히 행위가 먼저냐, 믿음이 먼저냐를 놓고 싸운다. 그런데 사실 이 두 가지는 같이 가는 것이 맞고, 굳이 순서를 따지면 믿음이, 마음이 먼저다. 이는 믿음이, 마음이 바로 서면 행위는 따라 오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행위의 경우, 내가 바른 마음, 바로 서 있는 마음이 없어도 다른 유인으로도 충분히 좋은 일, 선한 일을 할 수 있다. 물론, 선한 일을 반복해서 하다보면 그 사람이 그런 방향으로 변할 수도 있지만 그건 확실하지 않은 영역의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위가 모든 것의 판단기준이 될 수는 없다.
믿음 또는 마음이 먼저인지에 대한 다툼은 사실 '그 사람이 정말로 믿음과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는 행위인가?'로 판단하게 된다. 믿음 또는 마음이 먼저임에도 이에 대한 다툼이 있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믿음과 마음을 온전히 알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린 선한 의도로 한 것이라고 믿어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는 우리 안에 선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린 계속 우리가 어떤 의도로 살아가고 행위하고 있는지 우리의 마음을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인가를 했을 때도 그에 대해 오만해서도 안되며 드러내서도 안된다. 내 안의 깊은 곳에서 그것을 하게 만든 유인을 우리는 하나님 안에 온전히 서 있지 않은 이상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린 우리 자신을 계속해서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살아야 한다. 그게 인간에게 있는 죄성의 대가다.
이처럼 우린 다른 사람의 마음은 물론이고 우리 자신의 마음도 잘 알 수가 없다. 따라서 마음과 믿음을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 자신의 신앙을 자랑하고 다니는 사람은 일단 제대로 된 믿음이나 마음이 서 있지 않을 확률이 높은 것은, 제대로 된 신앙인이라면 자신의 신앙이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 세워진 것이 아님을 알기에 자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기독교인이라면, 정말 하나님 안에 서 있는 자라면 자신에 대해서 자랑할 수 없다. 그의 모든 것의 끝에는 하나님이 있을 수밖에 없다.
'말씀묵상 > 말씀 묵상-2020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복음 15-17장 말씀 묵상 (0) | 2020.10.29 |
---|---|
누가복음 12-14장 말씀 묵상 (0) | 2020.10.28 |
마가복음 6-8장 말씀 묵상 (0) | 2020.10.25 |
누가복음 3-5장 말씀 묵상 (0) | 2020.10.25 |
누가복음 1-2장 말씀 묵상 (0) | 2020.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