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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말씀 묵상-2020년

누가복음 15-17장 말씀 묵상

15장

15장은 잘 알려진 탕자의 비유를 포함해서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자를 되찾았을 때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솔직히 어렸을 때 가장 이해가 되지 않은 비유 중 하나가 탕자의 비유였다. 잃어버렸다가, 아버지를 버렸다가 거지가 되어서 온 아들을 어떻게 충성되게 옆에서 지킨 아들보다 더 환대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건 내가 너무 그 아들의 형, 아버지 옆을 지켜온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임을 이제는 깨닫는다. 그리고 내가 그런 마음을 갖는 것 또한 결국은 내가 더 많이 갖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도 깨닫는다.

탕자의 비유에서는 사실 돌아오는 탕자를 환대하는 아버지의 마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탕자의 비유 이전에 양과 동전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 설명하시듯이 말이다.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돌아온 아들. 잃어버렸다 찾은 것에 우린 얼마나 기뻐하는가? 그 마음은 사실 이해할 수 있지 않나? 예수님께서 탕자의 비유 직전에 작은 비유 두 가지를 드신 것은 듣는 자들이 탕자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기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언제든지 돌아오라고, 돌아오더라도 미워하거나 증오하지 않을거라고, 함께 할거라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아버지의 옆을 지키는 사람이 아닌 탕자가 내 모습이라고 생각해보자. 날 다시 받아준 아버지의 사랑에 얼마나 감격하게 될 것인가? 

이 모든 비유의 전제는 '이 세상의 것은 모두 헛되고, 헛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 더 많이 갖고 덜 갖는데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 안에 더 많은 형제, 자매가 거하고 누리게 되는 것에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면 된다. 

하나님께서 가지신 것이 유한하다면 다를 수도 있는데, 더군다나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가지시고 창조하신 분 아닌가? 그런 분이 다른 이를 사랑한다고 질투하는 건 이상하지 않나? 내가 다시 방황하다 돌아가도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있는 그대로, 아니 더 사랑해주실테니 언제든지 돌아오라는 초대인데, 우린 왜 그런 사랑에 불만을 가질까? 

'No servant can serve two masters. Either he will hate the one and love the other, or he will be devoted to the one and despise the other. You cannot serve both God and Money.' (누가복음 16장 13절)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그런 말을 많이 한다. '현실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맞게 들리지만 그 이면에는 사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부정하는 마음이 전제되어 있다. 어떤 이들은 사람이 돈 없이 살 수 없냐고 묻지만, 사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고 믿으면 내가 돈에 집착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어떻게든 우리의 욕심과 욕망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우리 안에는 악함이, 이기심이 있고 무엇인가를 살짝, 조금 좋아하기 시작하고 그것에 빠져들다보면 그것이 어느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보다 위에 있는 우상이 된단 것이다. 

다 내려놔야 한다. 00%만 내려놓는 것은 우리가 다시 하나님을 떠날 가능성을 남겨 놓는다. 우린 매일, 매일 다 내려놓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Abraham replied, 'They have Moses and the Prophets; let them listen to them.' (누가복음 16장 29절)

예전에는 나사로와 지옥에 간 부자의 비유가 천국과 지옥에 대한 얘기인 줄 알았다. 그렇게 설교들을 많이 하셨으니까. 유년부에서.

그런데 이 부분을 보면서 문득 이 비유는 사실 [너희에게는 내가 이미 충분히 얘기하고 있어, 너희가 모르지 않아]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더군다나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고 책이 넘쳐나는 사회에 사는 우리가, 정말 진리를, 진실을 알기 위해 조금만 노력한다면 우린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우리의 욕망, 욕정과 욕구에 빠져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때, 당당하게 기회가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 없을 것이다. 우린, 우리 주위에 충분히 많은 것이 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는 것들이 말이다. 

He replied, "If you have faith as small as a mustard seed, you can say to this mulberry tree, 'Be uprooted and planted in the sea,' and it will obey you. (누가복음 17장 6절)

이 비유는 복음서에 모두 나오는데, 이렇게 가정문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니, 우리가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것은 제대로 된, 하나님의 기준에서 제대로 된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많은 생각이 든다. 난, 제대로 믿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