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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말씀 묵상-2020년

누가복음 12-14장 말씀 묵상

Then Jesus said to his disciples: 'Therefore I tell you, do not worry about your life, what you will eat; or about your body, what you will wear. Life is more than food, and the body more than clothes. Consider the ravens: They do not sow or reap, they have no storeroom or barn; yet God feeds them. And how much more valuable you are than birds! Who of you by worrying can add a single hour to his life? Since you cannot do this very little thing, why do you worry about the rest?......Sell your possessions and give to the poor. Provide purses for yourselves that will not wear out, a treasure in heaven that will not be exhausted, where no thief comes near and no moth destroys. For where your treasure is, there your heart will be also. (누가복음 12장 22-26절, 33-34절)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지, 마실지 걱정하지 말라는 구절도 희안하게 나눠서 읽는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너희를 먹일 것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인생에 대한 걱정을 하지 말라는 원리에 대해서 고민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먹이실 것이라는 부분을 [잘 먹고 잘 살게 해줄게]로 해석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말 그대로 '굶지 않을거야'라고 하셨다. 기본적인 것을 먹이고 입힐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니 다른 건 내려놓고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필요한 건 거기까지다. 너희가 남은게 있으면 그것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고, 사라질 것에 가치나 마음을 두지 마라. 너희가 정말 필요한 건 내가 줄거라니까?라고 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사람들의 기도는 무엇을 먹을지, 입을지, 어디에서 잘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미 충분히 먹고 사는데 필요한 것들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것, 내가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할 때면 대천덕 신부님 생각이 난다. 과학을 전공했고, 무엇이든지 증명되어야 믿기에 하나님의 존재도 강원도 산골짝에 들어가서 하나님께서 계신다면 나를 먹이실 것이라며 하나님을 둔 실험을 한 사람. 그는 말 그대로 먹고 사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것을 두고 하나님의 존재를 실험했지 '내가 원하는 것을 갖고 풍족해질 수 있을까?'를 놓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실험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정말로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요구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욕망, 욕구와 욕심에 따라 구하고 삶을 추구하고 있는가? 우린 그 질문을 항상 해야 한다. 

Do you think I came to bring peace on earth? No, I tell you, but division. From now on there will be five in one family divided against each other, three against two and two against three. They will be divided, father against son and son against father, mother against daughter and daughter against mother, mother-in-law against daughter-in-law and daughter-in-law against mother-in-law.' (누가복음 12장 51-53절)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평화가 아니라 분란을 일으키러 오셨다고 한다. 정말 그게 전부일까? 아닐 것이다. 이 역시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에 있었던 유대인들의 견고한 카르텔을 깨러오셨다.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 오셨다. 그런 맥락에서 그는 분란을 일으키러 오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분란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것이다. 정의를 세우는 과정에서는 부정의한 현실과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마냥 부딪히고 싸워야 한단 것이 아니다. 예수님도 무조건 부딪히지는 않으셨다. 전쟁을 먼저 일으키시거나 공격적이지 않으셨다. 다만, 바로 세워져야 할 부분들에 대해 바로 세워져야 한다고 하셨을 뿐이다. 성경에서, 이 부분에서 말하는 분란은 그런 지점들을 얘기한다. 상대를 싸워서 이긴다는 개념으로 힘겨루기를 해야 한단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바로 세워야 할 것들을 바로 세워야 한단 것이고, 세상은 악하고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서 벗어나 있기에 그 과정에서는 분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단 것이다.

정복하고 싸우란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회들은 정복하고, 싸우고 이 땅의 권력을 가지려 아등바등하는 느낌이다. 그저 있는 곳에서 복음과 말씀을 세우고 사회와 공동체에 필요한 말을 하는 것. 그게 기독교인이 할 전부이다.

그 이후에 현실의 변화 등은 하나님의 전쟁이지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교회 다니는 자칭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하나님을 사용하고 자신의 노력을 전쟁을 이기려든다. 

우리는 이길 힘이 없다. 이길 수가 없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고, 자신들의 성을 세우려는 사람들의 이기심과 자기중심적인 생각도 만만치 않게 강하기 때문이다. 그 전쟁을 이기고 지는 건 하나님의 싸움이지 우리가 우리 힘과 노력으로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우린 그저 주어진 과정에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

이게 전쟁이라면 우린 병사에 해당한다. 병사는 전체적인 그림과 전략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주어진 전투, 상황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전투가 아닌 전쟁의 승리는 전체를 지휘하는 지휘관이 이끈다. 이는 그 지휘관이 전장을 전체적으로 보고 전략을 짜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끔이라고 하기엔 너무 자주, 자신이 지휘관이 되려든다. 내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내 인생의 지휘관을 하나님으로 여기고 주어진 것에 일단 최선을 다하고 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시라는 것은, 이 세상의 일도 하나님께서 지휘하신단 것이다.

그걸 기억하고, 믿고 일상의 작은 부분들에 최선을 다하는 것. 지금 당장 실패로 보이더라도 다시 하나님 안에서 일어나 갈 수 있는 길을 가는 것. 그게, 진짜 기독교인의 삶이다. 패배한 전투가 없는 전쟁은 없다. 하지만 몇 개 전투에서 졌다고 해서 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아니다. 지휘관들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 몇몇 전투는 전략적으로 버리기도 한다. 그걸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자신이 진짜 기독교인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