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sus answered: "Don't you know me, Philip, even after I have been among you such a long time? Anyone who has seen me has seen the Father. How can you say, 'Show us the Father'? Don't you believe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at the Father is in me? The words I say to you are not just my own. Rather, it is the Father, living in me, who is doing his work......Jesus replied, 'If anyone loves me, he will obey my teaching. My Father will love him, and we will come to him and make our home with him. He who does not love me will not obey my teaching. These words you hear are not my own; they belong to the Father who sent me. (요한복음 13장 9-10 / 23-24절)
성삼위일체 이론은 어렵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걸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단 것이다. 성부, 성자, 성령님이 계시고 성부 하나님이 성자를 이 땅에 보내시고 성령님이 이 땅에 머무시면서 우리를 돌본다는건데... 사실 현실만, 이 땅에서 세상에만 속해본 입장에선 그 세 존재가 하나라는게 잘은 이해되지 않는다. 받아들여지기도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부분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니까...라고 넘어가는 편이다. 이는 그런 '이론적인 측면'의 것을 제외하고 성경본문을 들여다보고, 예수님께서 해주신 가르침과 말씀을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성경이 현실을,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원리와 그 본질을 담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육에 속한 내가 어떻게 영의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겠나?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우리가 살아야 하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이자 우리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의 삶을 이 땅에서 살다가셨단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핍박당하셨으며, 우리가 작은예수로 살아가면 갈수록 세상은 우리를 핍박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만 그건 세상이 하나님 나라보다 클 때의 얘기다.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신 가치가 이 땅에 널리퍼지고 사람들이 그걸 더 많이 받아들일수록, 기독교인에 대한 핍박은 줄어들 것이다. 물리적으로 교회 다니는 사람이 늘어야 한단 것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사후에만 온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창조원리가 이 땅에서 구현되는 것도, 원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이 자유의지에 기반해서 다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습을 회복해서 이 땅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을 때의 원리가 구현되는 것도 하나님 나라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기독교인의 책임과 의무는 자신이 살아가는 순간순간을 그 원리에 따라 살아가고,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그 가치가 구현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잘못 들으면 책임과 의무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예수님께서는 인간도, 원죄를 안에 품고 있는 인간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줬는데 그런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은 어떻겠냐고 물으셨다. 우리는 욕구, 욕망, 욕정이 충족되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간이 가진 능력범위 내에서 그 모든 것을 가졌던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보여준다. 그렇다면 진짜 행복의 원리는 다른 곳에 있지 않을까?
그것의 최종 힌트는 예수님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항상 예수님의 말씀에 붙어있어야 하는건 이 때문이다. 하나님을, 이 세상을 창조하고 나를 이 땅에 보내신 이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건 사실 어렵지 않아야 한다. 기계는 그 기계를 만든 사람이 가장 잘 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다면 나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잘 아신다. 그리고 성경은 나를 만드신 분의 매뉴얼이다. 그리고 그 매뉴얼의 핵심은 예수님이다.
'I am the vine; you are the branches. If a man remains in me and I in him, he will bear much fruit; apart from me you can do nothing. If anyone does not remain in me, he is like a branch that is thrown away and withers; such branches are picked up, thrown into the fire and burned. If you remain in me and my words remain in you, ask whatever you wish, and it will be given you. (요한복음 15장 5-7절)
절대자가, 이 세상을 창조한 절대자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롤모델로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우리가 그렇게 사는 것이 우리를 위해서도 더 행복하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그 원리도 간단하다. 물질에 대한 인간의 욕구와 욕망은 끝이 있는가? 없다. 이는 수많은 재력가들이 입증한다. 우리는 몇 억만 더 있으면 더이상 돈 욕심내지 않을 것 같지만 그 때는 또 돈으로 할 수 있는 다른 경지가 보일 것이다. 전세계에 집이 몇 곳에 있고, 자가비행기가 있어도 우리는 여전히 돈을 더 벌면 할 것이 보이고, 세금 내는 것이 아까울 것이다. 일 자체에 미쳐있었던 스티브 잡스, 전세계에서 가장 큰 부자 반열에 서 있는 빌 게이츠, 그리고 어쩌면 워런 버핏 정도를 제외하면 전세계 다른 부자들은 여전히 돈을 더 벌기 위해 돈을 번다. 그리고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머리를 쓴다. 이미 갖고 있는 돈도 평생 쓰지 못할만큼 많아도 말이다.
그렇다면 우린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된다. 우리가 빌 게이츠와 같은 수준의 부자가 될 수 없다면. 그리고 빌 게이츠에 대한 다큐도 나왔지만 사실 그가 누리는 것은 생각보다 사치스럽고 호화롭지 않다. 그렇다면 진짜 행복은 물질 자체보다 현재를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우리의 시선에 온다고 하는게 맞지 않을까? 그리고 그 행복은 결국 관계에서 온다. 또 그 관계는 상호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서로를 아껴주는 공동체가 되면 전체적인 행복지수는 올라가게 되어있다.
My command is this: Love each other as I have loved you. Greater love has no one than this, that he lay down his life for his friends......I no longer call you servants, because a servant does not know his master's business. Instead, I have called you friends, for everything that I learned from my Father I have made known to you. You did not choose me, but I chose you and appointed you to go and bear fruit-fruit that will last. Then the Father will give you whatever you ask in my name. This is my command: Love each other. (요한복음 12-13, 15-17절)
브런치에서 이제 사랑에 초점을, 연애나 결혼이 아니라 온전히 사랑에 초점을 맞춘 시리즈를 쓰기 시작했다.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은 연애나 결혼을 떠올리겠지만, 난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이성관계를 넘어선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했으면 하는 소망과 바램을 갖고 쓰고 있다. 내가 그 작업을 하는 것은, 세상은 이성관계에 초점을 맞춘 사랑에 가장 관심이 많기 때문에 그 줄기를 타고 가야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고, 그 줄기를 통해 진짜 사랑,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겐, 내가 쓰는 모든 글은 사역이며 전도의 일환이다. 블로그에서 말씀 묵상을 쓰는 글 외에는 기독교나 성경, 예수님, 하나님 얘기를 직설적으로 쓰지 않는다. 하지만 가능하면, 최대한 내가 쓰는 다른 모든 글들이 어떻게 하면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구현되는데 도움이 될지, 그 글을 읽는 사람이 성경이 말하는 가치에 설득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쓴다. 그게 내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고 내가 행복할까? 어쩌면 난 내가 잘하는 것을 할 때 사실 행복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잘하는 것은, 남들이 못하지만 난 할 줄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 안에 심어놓으신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세상과 주위 사람들이 심어놓은 것이고 말이다.
그걸 알면 가장 좋지만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다른 걸 잘 모르겠으면, 그걸 기준으로 모든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그게, 진짜 기독교인의 삶이다.
'말씀묵상 > 말씀 묵상-2020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복음 19-21장 말씀 묵상 (0) | 2020.11.07 |
---|---|
요한복음 16-18장 말씀 묵상 (0) | 2020.11.06 |
요한복음 10-12장 말씀 묵상 (0) | 2020.11.04 |
요한복음 7-9장 말씀 묵상 (0) | 2020.11.03 |
요한복음 4-6장 말씀 묵상 (0) | 2020.1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