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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 혹은 개독/일반적인 신앙에 대하여

교회 공동체에 대한 생각

조심스러운 글이다. 내가 다녔던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이 페친으로 있어서. 하지만 이 부분은 내게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언젠간 나누고 싶었다.

우선 대전제를 말하자면, 난 교회는 가능하면 옮기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정말 부득이한 상황으로, 아니면 지금 다니는 교회에 다님으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지는게 아닌 이상, 교회는 세상적인 이유나 개인적인 취향을 이유로 옮기는 건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런 말이 모순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건, 내가 전역하고 2번 교회를 옮겼기 때문이다. 난 제대하고 온누리교회 대학부에 다녔고, 그 후에 높은뜻 푸른교회를 다니다 지금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변명을 하자면, 내가 교회를 옮길 때는 상황이 나를 그렇게 이끌었다. 옮기기 몇 달 전부터 뭔가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예배드리는게 힘들어서 '하나님 저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기도했고, 수개월 후에 상황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교회를 옮기게 됐다.

사실 온누리교회도 교회를 옮기면서 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입대하기 전에 다녔던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입대하면서부터 제대하고 나서는 다른 교회에 가겠다고 마음 먹었었으니까. 고등학교 친구가 와보라는 말에 갔는데 예배가 너무 좋아 남았고, 교회성전이 아닌 극장이나 클럽에서 예배드리던 그 공동체가 양재에 있는 공동체와 통합되었는데 그때 마침 고등학교 친구가 같이 다니자는 얘기에 높은뜻 푸른교회에 갔다 예배가 좋아서 남았었다. 그리고 4번째 변시에 불합격하면서 사역은 내려놓고 공부만 해야겠단 생각에 '잠시' 떠나 있자고 마음을 먹었을 때 군대 선임이자 과선배인 형이 지금 다니는 교회에 와보라고 해서 갔다가 등록을 했다. 다시 떠날 것이라 해도 1년만 다녀도 등록은 하는게 맞다고 생각해서. 그러다, 눌러앉게 됐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상황에 이끌렸지만 사실 그 전에 이미 고민이 많은 상태였다. 그 고민은 모두 교회의 [프로그램]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떠나는 것을 고민하는 시점에 두 교회는 모두 최소한 내게는 인위적으로 느껴지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받아들여지지를 않더라. 그런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늘 그렇듯, 목사님들 설교는 그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그로 인해 피로도가 가중되었다. 특히 온누리교회의 경우, 학부를 졸업하고 각자 다른 삶으로 흩어져 살다보니 나이대 외엔 공통점이 없어서 삶을 나눌 수 없는게 힘들었다. 서로 본인 얘기만 하고 공감대는 형성되지 않았고, 서로 함게 하는게 즐거울지는 몰라도 그 안에 하나님 얘기는 없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 면에서 사실 높은뜻 푸른교회를 떠나는 건 내게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이는 내가 5년간 섬긴 높은뜻 푸른교회 2부 찬양팀은 내가 처음 경험한 [기독교 공동체]였기 때문이었다. 우린 오전 9시에 모여 함께 예배하고, 콘티 연습을 하고, 예배를 드리고, 모임을 하며 말씀을 읽거나 삶을 나눴다. 행복했다. 2부 찬양팀이 없었다면, 난 5년 간의 지옥 같은 변시준비생으로의 삶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4번째 변시에 떨어졌을 때, 친양팀 형누나들은 내게 어설픈 위로를 건내지 않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대해줬는데,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이게 사랑이구나'란 생각을 했다.

그렇게 힘들게, 이번엔 올인을 해야 하니까 떠났다. 하지만 새로 시작하는 프로그램도, 그에 맞춰진 목사님 설교도 공감도, 동의도 안됐다. 그런데 지금 다닌 교회는 조금 많이 달랐다. 새신자교육 때부터 '1년 있다가 떠날려고 왔다'고 말했더니 목사님께서 좋아하시더라. 나중에 듣고 보니 목사님은 교회 옮기시는 건 안 좋아하는데 그런 식으로 왔다가는 건 좋아하신다고 하더라.

그리고 모든게, 조금 달랐다.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들에 공감이 됐다. 우리 교회에 사역이 없는 건, 섬김은 차고 넘쳐서 해야 하는거지 일로 하는게 아니다. 말씀만 보고 나도 믿지 말아라. 가족이 함께 예배 드려라. 아이들을 무시하지 마라. 어른들인 100% 이해해도 하나도 실천하지 않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30% 알아들으면 다 실천한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등 심지어 십일조도 우리 교회에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도, 십일조의 본질로 들어갔을 때 공감이 되었다. 직분이 없어서 서로 형제님, 자매님으로 부르는 것도, 여전히 어색은 하지만 그게 맞고 좋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 교회에 다니는게 조금 피곤하게 느껴질 수 있다. 매년 교회 운영방식(?)이 달라지니까. 건물 없이 사용하게 해주시는 공간을 쓰기도 하고. 내가 온 첫 해에는 매주 예배가 있었지만 재작년에는 1주일에 한번 전체 예배가 아닌 통독반을 묶은 공동체끼리 드리는 예배를 월 1회 드리더니 작년에는 전체 예배 1회, 나머지는 공동체 또는 통독반 단위 예배를 드렸다. '뭇별처럼 흩어져서 예배를 드려라'면서. 그 덕분에(?) 올해 뉴노멀에 적응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학부시절에 스스로를 유목민이라고 정의했다. 미래가 아닌 과거지향적인 표현이었다. 한국과 외국을 오가며 살아야 했으니까. 그런데 내 삶은 전반적으로 유목민이 되는게 확정되었다. ㅎㅎㅎ 교회도 그렇다. 난, 2004년에 제대한 이후 16년째 내가 다닌 교회가 소유한 건물에서 예배를 드린 적이 없다. 그뿐인가? 내가 다닌 세 교회는 모두 내가 다니는 동안 예배처소를 최소한 1번, 옮겼다. 온누리교회 바울공동체는 2번, 높은뜻 푸른교회도 2번.

심지어 고등학교 시절에도 그랬다. 내가 다녔던 교회는 닭장을 개조한 곳에서 예배하다 건축을 해서 이사했다. 아니다. 초등학교 때부터지. 상해에 살때는 가정교회에서 시작해서 무도학교로 옮겨서 예배를 드렸고 매주 예배 세팅하고 푸는 걸 봤으니까. 그 기간을 합치면 총 24년 정도가 된다.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건물을 소유하지 않은 교회에서, 자리를 풀었다 세팅하거나 예배처소를 옮기면서 예배를 드려온 것이다.

돌아보면 잡초처럼, 야생에서 훈련된 느낌이다. 모태신앙이지만, 안정적으로 기성교회의 틀에서 교회를 다닌 적이 거의 없으니까. 내 신앙색이 조금 세고, 강한 것은 어쩌면 그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고등학교 시절 기숙사 앞에서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드린 기도를 기억한다. 목회는 하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세상 한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치열하게 싸우면서.

기도, 함부로 하는거 아니다. 다른 기도는 그렇게 안 들어주시는 양반이 그 기도는 참 예쁘게 보셨나보다. 이렇게 거칠게 키우신 것을 보면.

돌아보면 내가 옮기지는 않았는데, 항상 날 끌어주는 지인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내게 필요한 것이 채워지고 훈련되는 교회로 옮겼다. 그리고, 돌아보니 지금 내가 다니는 교회가 내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더라.

난 생각이 많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개인적으로는 나같은 놈이 어떻게 하나님 같은 걸 믿게 됐을까 싶을 정도로. 난 예수님의 손바닥에 있는 못자국을 확인한 제자가 아니라 확인하지 않은 제자들이 신기한 사람일 정도이니까.

교회 공동체는 어떤 곳일까? 난 정말 찐한 공동체를 높은뜻 푸른교회 2부 찬양팀에서 경험했고, 지금 교회에선 공동체의 또 다른 차원을 경험하고 있다. 사실 지금 교회에선 2부 찬양팀과 같은 찐한 공동체성은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교회가 전반적으로 나가는 방향에 십분 공감하고, 통독반 분들을 위해 기도하게 된다. 기꺼이 헌금을 하고 싶고, 헌금을 더 하지 못하는 내 현실 때문에 힘들기도 하다. 마음이 있는 것. 같은 방향을 보는 것. 그게 기독교 공동체일 것이다.

기독교에서 공동체는 매우, 매우 중요하다. 이는 인간은 원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 홀로 온전히 버티며 설 힘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그 사람이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게 잡아준다. 내가 생각하는 기독교 신앙은 따로, 또 같이 가는 것이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단단해야 하지만, 그걸 나 혼자 할 수는 없고 함께 공동체로써 나가야 한다. 그리고 진짜 신앙은 내 안에 머물지 않고 주위를, 우리가 속한 사회를 보게 한다.

하지만 그 공동체가 우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인간은 인간적 유대가 너무 가까워지면 그 공동체 자체가 우상이 되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대부분 교회들은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 교회는 공동체지 집단이나 건물이 아니다.

난 지금도 우리 교회가 이상해진다 싶으면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물론, 그 전에 통독반 분들, 목사님과 얘기를 해보겠지.

논의를 조금 더 확장해서 평신도 교회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나는 평신도 교회가 성경적이지 않다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의 교회 시스템적으로, 교리적으로 보면 그런 교회들이 잘못된 것으로 평가될 수도 있지만 '원론적으로 말하면' 그런 교회들이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본다.

다만, 말씀을 깊게 이해하고 말씀 안에서 훈련되고, 공부한, 말씀적인 측면에서 기준을 세워줄 수 있는 기둥이 없는 평신도 교회는 위험할 수 있다.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아무리 신앙이 좋고 말씀을 많이 읽고 이해하는 사람이라 해도 평신도가 자신의 삶을 살아내면서 한 공동체의 중심을 잡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구성원 모두가 동등한 수준으로 서로를 그렇게 잡아주는 건 더 힘들고.

그래서 사실 현대사회에서는 목회자가, 말씀 전문가가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 교회에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오늘날 목사라는 직함을 가진 사람들 중에 정말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되듯이, 목회자로 제대로 살아내지 않는 사람들만 부각이 되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래야, 조금 덜 힘들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몇년째 참 힘들고 괴롭다.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고 예수님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것이. 그리고 그렇게 만드는 자칭 기독교인들에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지금 다니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면, 나도 중심을 잡지 못했을 것 같다. 그래서 아직은, 우리 교회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