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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말씀 묵상-2020년

로마서 8-10장 말씀 묵상

Therefore, there is now no condemnation for those who are in Christ Jesus, because through Christ Jesus 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set me free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 (로마서 8장 1-2절)

이전에 내가 기독교인으로 남은 이유에 대한 긴 글에서 나는 자유가 사랑의 가장 큰 표현이라는 생각을 쓴 적이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글은 여기에서 다루지 않겠다.

다만, 우리가 왜 자유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지와 사랑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이 말씀에 있어서 이 말씀을 남겼다.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 믿는다면, 사랑의 하나님을 알게 된다면, 그에 따라 우리가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사랑의 마음으로 만드셨음을 믿게 된다면, 우린 우리 힘으로 뭔가를 하려하고 우리 노력만으로 뭔가를 이루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 안에서 자유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죽음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고백컨대, 난 아직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때 정말 힘들 때는 죽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죽음을, 참 깊게도 묵상했었다. 용기가 없어서, 그리고 내가 죽으면 가족이 그 후의 삶을 어떻게 살지가 보여서 선택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마음도, 그걸 넘어서고 나니 그렇게 죽음을 묵상했던 나의 마음도, 감사하더라. 내가 죽음을 그렇게까지 묵상하지 않았다면 난 지금처럼 매일, 매일 죽을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한 선택을 한단 생각을 못했을 것이고,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소망함도 갖지 못하고 이 땅의 것에 여전히 구속되어 있을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잘 믿지 못했을 것이다. 

우린 누군가 죽었을 때 하나님을, 신을 원망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우린 누가 죽었을 때 왜 슬퍼하고 힘들어하나? 그건 이 땅의 것이 더 좋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우리가 우는 것은 그 사람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죽음이 두렵고, 그 사람을 이 땅에서 더이상 보고, 그와 함께 대화하지 못하기 때문에 울고 힘들어 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내 자신 때문에 우는 것이다. 내가 힘들어서.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 사람이 정말 더 힘들까? 그건 이 땅에서 사는 것이 더 행복한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이 땅에서의 삶이 그렇게 행복하고 좋기만 한가? 돈을 많이 벌면 그럴까? 아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그만큼 노력을 해야 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 삶에는 기쁨과 즐거움도 있지만 그건 보통 그만큼의 희생과 노력을 해야 쟁취할 수 있으며, 그런 희생과 노력은 고통을 수반한다.

죽은 사람은, 우리는 그 후의 세계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무도 모르지만,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것이다. 죽은 사람은 더이상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몸이 아프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여전히 이 땅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고,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불확실성을 믿음 없음이라고 하고 싶지 않다. 의심이 많은 사람인 나는 그 부분은 그냥 모를 영역으로 뒀다. 죽음에서 돌아온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있고, 그걸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심정지가 온 사람이 그 방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고 다시 돌아온 기록들이 있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며.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닐수도 있다. 우린 그걸 100% 알 수는 없다. 더군다나 과학자나 의사가 아닌 우리는. 

분명한 것은 우린 언젠간 죽고, 그 후에 뭐가 있는지를 100% 아는 사람은 없단 것이다. 하지만 우린 언젠간 죽는다. 그리고 그 죽음은 이 땅에서 우리가 집착하고, 노력하고, 쟁취하려 하는 것에서 우리를 놓아준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죽음이 꼭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살고 싶은 것은... 아직 이 땅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많기 때문이다. 난, 공부하고 글 쓰는 사람이다. 아직은 이 땅에 내가 믿는 진리를, 진실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전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깨달은 것, 내가 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설득하고, 설명하고 싶다. 한 사람에게라도 더 다가가고 싶다. 내 글을 통해. 그 소망함이 너무 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너무 많기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사랑하며 살고 싶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왜 만드셨는지 우리는 모른다. 하나님을 만나면 가장 먼저 따지고 싶은 부분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린 이 세상에 존재하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셨다면, 이 세상은 원래의 모습과 질서가, 아름다운 질서가 있단 것이다. 이 땅이 그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회복할 수 있도록 내가 가진 것을 다 쏟아붓고, 그러고 나서 죽고 싶다. 그리고 죽을 때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내 믿음의 수준은 사실, 죽음 후를 두려워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겠단 것은 그만큼 내가 강하기 때문인데, 나는 죽음으로 인해 내 존재가, 의식이 소멸되는 것이, 아직은 두렵다. 죽을 때는, 갑작스러운 사고가 아니라, 명확한 의식을 갖고, 내가 이제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에서 자유로운 상태로 죽고 싶다. 아직은, 그럴 자신이 1%도 없다.

다만, 죽음을 두려워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건 내가 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에 시간과 노력을 쓰는 것이기에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The mind of sinful man is death, but the mind controlled by the Spirit is life and peace; the sinful mind is hostile to God. It does not submit to God's law, nor can it do so. (로마서 8장 6-7절) 

기독교의 죄에 대해, 지금까지 교회에서 누군가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것을 들은 기억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죄라는 개념을 다양하게 사용한다. 

내가 이해하는 '죄'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죄는, 모두 다 죄이고 죄를 짓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 그것의 크고 작음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형사처벌을 받으면 현시점에서 일단 모두 감옥에 있는 것이지 앞으로 뭐가 어찌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 크고 작음은 내가 정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죄의 크기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질서에서 어느 정도로 벗어나 있는지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문제다. 

따라서 우린 그저 다 죄인일 뿐이다. 이는 우리가 항상 마음으로 죄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돈을 하나님보다 먼저 추구하는 것,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것, 그로 인해 두려워 떠는 것, 음란한 생각을 하는 것, 사람을 미워하고 욕하는 것. 그걸 행동으로 하지 않았어도 마음으로 하는 것만으로도 우린 이미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고, 우리는 누구도 그런 죄에서, 한 순간도 자유롭지 못하다. 

동성애도 죄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지을 수 있는 수많은 마음의 죄일 뿐이다. 사람들은 동성애를 육체적인 행위와 결부해서만 생각하는데, 이성 간의 사랑에서도 스킨십이 전부가 아니듯이, 동성애자들이라고 해서 스킨십에만 몰두하는게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성 간의 관계에서 작용하는 호르몬 작용이, 그들은 어떤 이유에선가 동성을 상대로 일어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건 우리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추구하게 되는 망가진 마음처럼, 그들의 마음이 망가진 것이라는 면에서 죄인 것은 맞지만, 분명 창조질서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욕구, 욕망, 욕정을 우리 마음대로 통제하고 조절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도 그들의 마음을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죄인이다. 우리는 모두 창조의 질서에서 어긋나 있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우리 삶의 과제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할 때, 창조의 질서에 가까워질 때야 진짜 평안함을 회복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And he who searches our hearts knows the mind of the Spirit, because the Spirit intercedes for the saints in accordance with God's will. (로마서 8장 27절)

우리는 우리 마음을 항상 돌이켜 봐야 한다. 이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고 들여보는 것이 우리가 성령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임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의 마음을 돌보고, 돌아보는 것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