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연애와 그중에 몇 번의 사랑을 했다. 호감과 좋아하는 마음 그리고 사랑이 무 자르듯 잘라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 기준으로는 그렇다.
세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러지는 않을 예정이지만 그렇게 '연애와 사랑'을 한 횟수보다 소위 말하는 '짝사랑'을 한 횟수가 적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어떤 이들은 '고백을 했다가 거절당한 횟수와 비교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할지 모르지만, 상대를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말 한마디 꺼내보지 못한 사람도 있으니 그 횟수만으로 정확한 비교가 되지는 않을 듯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서부턴가 '짝사랑'이란 표현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짝사랑'은 왜 따로 구분해야 하는 걸까? 다른 언어에서는 별도의 표현이 있는 경우가 거의 없는 그 표현이 왜 한국어에는 있어야 하는 걸까? 짝사랑은 두 사람의 마음이 일치했을 때보다 비참하거나 부족한 것인가? 문득, 한국어에만 그 표현이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 전반적으로 목표지향적인 문화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짝사랑이니 아니니 하는 얘기를 별로 하지 않지만, 조금 많이 더 어렸을 때는 '너 혼자 좋아한 것 아니냐'거나 '짝사랑도 어지간히 해라'는 식의 대화가 친구들 사이에서 적지 않게 오갔던 것 같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짝사랑을 비참하거나 불쌍한 것으로 여기고는 했다.
과연 그럴까? 정말로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의 마음이 그러하지 않은 것은 불쌍하고 비참한 일일까?
그렇게 생각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상대를 좋아하면, 상대를 갖고 싶었고 상대를 내 연인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으며, 그렇지 못할 때는 엄청나게 힘들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이는 비슷할 것이다.
또 한 번 그렇게 힘이 들던 중에 문득 '왜 내가 상대를 소유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정말 상대를 사랑한다면, 상대를 나만큼 소중하게 여긴다면 상대가 가장 행복하기를 바라야 하는 게 아닐까? 거기에서 멈춰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상대의 마음도 나와 같아서 나를 그렇게 바라봐주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상대가 지금 내게 마음이 없는 상황에서 내가 나를 좋아할 것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상대를 위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니었다. 사랑은, 할 수 있는 것 그 자체로 아름답고 행복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먼저 위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경험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소중하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리고 상대의 마음이 지금 나를 향하지 않고 있다면, 상대가 더 행복한 상태는 내가 그것을 강요하는 상태가 아니라 내가 그것을 존중하고 거리를 두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짝사랑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짝사랑을 하는 사람은 운이 없고, 힘들 수는 있지만 짝사랑도 충분히 아름답다. 아니 사실 진정한 의미의 짝'사랑'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아름다운 것일 수 있지 않을까? 상대가 내게 무엇을 주지 않더라도, 내가 상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아름답다고 평가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짝'사랑'을 하는 사람은 어쩌면 비참한 사람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후로는, 상대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음으로 인해 힘든 감정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상대가 존재해줘서 고마웠고, 상대에게 마음이 가 있는 동안에는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누군가에게 호감이 있을 때 상대를 사랑하는지 여부는, 내가 상대를 그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고맙고 행복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상대를 소유해야만, 상대를 내 연인으로 만들어야만 사랑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은 마음의 작용이지 관계를 지칭하는 표현이 아니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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