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아직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없기에 요즘 부모들이 자녀들의 연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모른다. 그리고 내가 어떨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도 없다. 하지만 아직도 부모의 지위는 없고 자녀의 지위만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연애를 몇 살부터 할 수 있느냐는, 혹은 괜찮냐는 질문만큼 멍청한 질문은 없다. 그리고 연애하기보다 공부하는데 더 집중해야 한다거나, 아무것도 모르면서 연애는 무슨 연애냐고 하는 말들도 꼰대질에 불과하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좋아하는 여자아이'들'이 있었다. 3, 5학년 때는 있었는지 여부가 기억이 나지 않지만 2, 4학년 때 좋아했던 여자아이들은 이름과 얼굴까지 기억이 난다. 아직도.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순수하고 순진했던 게 4학년 때는 수학여행에 가서 내가 좋아했던 아이의 사진만 하나 가득 찍어와서, 사진을 인화해보니 절반 이상이 그 친구의 사진인걸 보고 어머니께서 '너 얘 좋아하는구나?'라고 물으시자 화를 내면서 아니라고 했던 기억도 있다. 몰래 찍었던 사진들은 아니었지만, 어머니께 다른 사람 사진 이렇게 함부로 찍는 거 아니라고 혼났던 기억도 있다.
정말 순수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순수하게 누군가를 좋아했던 시절이 아닌가 싶다. 그때 나는 그 친구들의 어떠한 것을 막 따져가고 계산하면서 좋아한 게 아니라, 그냥 나도 모르겠는 어떠한 감정이 안에서 일어나 그들을 좋아한다고 느꼈다. 나뿐이겠나? 물론 그때와 달리 요즘에는 초등학생들도 너무 많은 미디어에 노출이 되어 있어서 그 영향을 받겠지만, 그래도 그 아이들은 여전히 어른들보다는 순수하고 순진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아이들이 누군가에 대해서 호감을 갖는 것을 억누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부모가 그 옆에서 아이와 그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상대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건지 설명해주고 가르쳐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애들이 무슨 사랑을 알아'라고 할지도 모르나, 사실 사랑을 가장 순수하게 잘 할 줄 아는 것은 아이들일지도 모른다. '학생이 무슨 연애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누군가 학생으로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면이 학생인건가? 그렇다면 회사원인 사람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회사원인가? 학생은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공부를 주된 업으로 삼기 때문에 주어진 호칭이고 그들은 다른 영역에서 독립된 인격체이며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자녀이기도 하다. 상황에 따라서는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아이들도 있지 않나? 따라서 '학생이 무슨'이라는 말은 논리적으로도 성립될 수 없다.
그런 코멘트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묻고 싶다. 어른인 당신은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얼마나 아냐고. 당신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게 사실은 욕심, 욕망, 욕정이 아니냐고. 우리는 때때로 아이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무조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사실 아이들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어른들보다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사랑에 대해서는 더욱더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 물을 먹지 않았으니까.
억누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그에 대해서 '너무 어렸을 때부터 그런 거(?)에 노출되면 문제가 생긴다'라고 말할지 모르나, 나는 오히려 너무 많은 것들을 억누르면 그에 대한 부작용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사실 연애, 성에 대해서 부모와 자녀가 얘기를 못할게 뭐가 있나? 성이 정말 아름다운 것이라면 왜 그게 우리 가정에서 대화의 주제가 되어서는 안 되나? 나는 그걸 무조건 억누르고 피하려고 하는 시도가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잘했던 사람들은 대학에 진학하고, 취업을 한 이후에 유흥업소에 들락거리고 극단적으로 노는 경우들이 생각보다 많다. 내가 아는 지인은 소개팅할 때 '사'자가 들어가는 사람은 만나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공부만 한 사람들은 퇴폐적으로 노는 경우들이 분명 꽤나 높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건 그들이 엄청나게 억눌려서, 자신의 안에 일어나는 마음과 생각들을 통제하도록 훈련되었던 것이 고삐가 풀리면서 왜곡되어서 발현되는 현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에 잘 놀고, 잘 연애하는 법을 익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술은 어른에게 처음 배워야 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 말이다. 학생들은 연애'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연애를 할 뿐이다. 물론 그들이 지켜야 할 선, 그들의 삶을 위해서 지켜야 할 선을 지키도록 조언해 주는 것은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조언을 그 친구들이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윽박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그 친구들의 사랑을, 연애를 존중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섞어서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라고 말해줘야 한다. 무조건 통제하고 막는 게 능사가 아니란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성관계를 하는 데 있어서 피임기구를 사용하는 비율이 40% 밖에 되지 않는다는 통계는 연애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 어렸을 때부터 억누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성교육 등에 대한 필요가 제기된 지는 이미 10여 년이 지났지만, 과연 학교와 가정에서는 그에 대한 교육이 얼마나 이뤄지고 있나?
만약 누군가가 '그게 된다는 걸 증명해라'라고 한다면, 사실 내가 성장과정에서 경험했던 것들이 그렇다. 나는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아버지 직장을 따라서 해외에 살았는데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는 연애하는 것과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신청을 하면 카드와 꽃을 밸런타인데이에 같은 학교 학생에게 전달하는 이벤트를 학생회에서 진행을 했고, 댄스파티는 중학교 때부터 매년 2-3회씩 진행했고, 학교에서 연애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들은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연애하고 있는 아이들과 연애상담을 하기도 했다. 또 민망하기는 했지만 난 중학교 때 학교에서 피임도구 등에 대한 교육을 받았고, 내 친구들 중에서는 피임도구를 색깔별로 모으는 친구들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중학생이 무슨 짓이냐'라고 할지도 모르나, 사실 통제하고 억누른다고 그런 것들이 조절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인터넷이 지금처럼 발달되어 있는 세상에서는. 그렇다면, 어른들이 생각하는 '지켜야 할 선'은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서 아이들이 받아들여질 수 있게 전달되어야 하지 무조건 억누른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애들이 뭘 알겠어'라고 무시하지 말자. 아이들은 사실 어른들보다 훨씬 순수하고, 이해력과 응용력이 빠르다. 머리와 마음이 굳지 않았기 때문에.
인생의 가장 예민한 시기에 그런 환경에서 자라나서 그런지 사실 난 정말 춤을 추러 가는 클럽이 아닌 만남을 위한 클럽의 분위기인 곳은 오히려 피하게 됐고, 유흥업소에는 애초에 발을 딛지도 않게 되더라. 어렸을 때부터 건전한 방식으로 이성과의 관계, 그리고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내게 큰 행운이었다. 누군가가 '다른 나라에서도 우리나라에서 있는 성, 그리고 연애와 관련한 문제가 있는 건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라고 묻는다면, 그건 사람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고, 그런 현상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발생하는지를 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사회 전반적인 차원에서 성적인 측면, 그리고 연애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과 깨어진 가정들의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많은 나라들보다 꽤나 심각한 상태라고 나는 느낀다.
연애도 조기교육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운 것은 조기교육 열풍인데... 개인적으로 왜 연애에 대해서는 조기교육을 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의구심이 있다. 연애, 사랑, 성은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부분이 아닌가? 사실 영어, 수학, 과학 같은 것들은 조기교육을 하지 않아도 후천적인 노력으로도 따라잡을 수 있지만 (사실 그런 방향으로 재능을 가진 친구들은 금방 따라잡는다. 어렸을 때부터 해야만 잘한다는 건 그쪽으로 탁월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난 수학이랑 과학은 아무리 학원을 다녀도 잘 못하겠더라.), 사랑에 대한 것은 한번 왜곡된 방식으로 자리를 잡으면 그 상태가 바뀌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연애, 여자친구, 남자친구와 성에 대해서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이 그에 대한 호기심이나 관심을 가졌을 때부터 같이 대화하고 설명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그와 관련한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어른들이 한 번도 그런 대화를 어렸을 때 해본 적이 없어서 자녀와 그런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데 있지 않을까? 뭔가 그에 대한 대화를 하는 게 간지럽게 느껴지고 말이다. 그래도 그런 노력은 아이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써 존중하면서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아이가 맞는 면은 맞다고 인정해주면서, 다른 측면을 조심스럽게 보여주면서 말이다.
사실 아이들에게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어른들에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어른들에게 있는 문제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혀 져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길 뿐이다. 물론 그 어른들에게 있는 문제들 또한 그 어른들의 탓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있는 문제를 아이들에게 그대로 물려주고 싶지 않다면, 변화는 어른들에게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건 사랑, 연애, 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일부 어른들은 이번 생은 망한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들의 생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망쳐진 생은 우리 하나로 충분하지 않을까? 아이들에게는 다른 세계를 열어줘야 하고, 그 시작은 아이들의 마음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데서 시작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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