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가 중요하지 않단 말에 대하여
소개팅을 할 때 한 때는 사진을 반드시 요구했고, 나이가 어느 정도 이상 들고난 이후에 외모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때 사진 없이 주선자만 믿고 소개팅을 했다가, 나이가 더 들면서 역설적으로 사진을 다시 부탁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정신 차려, 내가 살아보니 외모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아직도 외모를 보냐며, 그래서 이러고 있는 거라고 혹자는 그러더라.
그들의 말은 맞지만 틀렸고, 틀렸지만 맞다. 우선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함께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는 점에서, 아니 중요한 덕목 중에 어쩌면 열 손가락 안에도 들어가지 않는 것이란 점에서 맞는 말이다. 그리고 내 지인의 지인이 연예인 같은 외모를 둔 아내를 두고 평범한 외모의 사람과 바람을 피웠다 보니 경찰서에서 (간통죄가 폐지되기 전에) 상간녀를 위로했다는 웃픈 이야기는 외모가 두 사람의 관계를 유지시켜주는데 결정적인 요소도, 핵심적인 요소도 아님을 보여준다.
외모는 중요하다
하지만 '외모'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말은 틀린 말이다. 사실 우리는 추상적으로 '외모'라고 하지만 한 사람의 외모라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의 이목구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입은 옷, 표정, 이목구비 등을 모두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그런 차원에서 누군가의 외모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람의 표정과 눈빛은 사실 그 사람의 성격을 일부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그걸 알아보는 눈이 있는지가 더 중요하긴 하겠지만 분명한 건 사람의 외모는 그 사람에 대해서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알려준단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람이 풍기는 느낌과 인상이라는 측면에서 외모는 단순히 이목구비 이상을 말해주기 때문에 이목구비가 아닌 전체적인 외모를 확인하는 것이 꼭 비판받을 일은 아니다.
두 번째로 '관계의 지속'이라는 측면에서 외모는 다른 요소들보다 덜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관계의 시작'의 측면에서 외모는 큰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이는 사실 두 사람의 첫 이미지는 외모를 통해 많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물론 두 사람이 만나서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의 외모보다 다른 것들이 더 많이 보이면서 외모는 덜 중요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한 번 만나서 서로 알아갈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 정도로 대화가 잘 통할 사람이 아니라면 두 사람이 감정을 느끼는 데는 외모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혹자는 만나다 보면 외모가 덜 보일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두 사람이 더 알아간다고 해서 분명히 더 잘 맞을 것이란 보장도 없지 않나? 더군다나 친구로써 A와 이성으로써 A는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말이다.
물론 두 사람이 관계를 지속하고, 더 나가서 가정을 꾸려 나가는 데 있어서 외모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하다. 사실 두 사람이 많은 것을 같이 경험하고, 대화를 많이 하고 서로가 서로의 인생을 상대방의 인생 위에 쌓고 그 관계가 깊어지다 보면 외모보다 그 시간과 경험 자체가 더 소중해지는 것은 당연하고, 독립되어 있던 인생을 대화와 경험을 통해 같이 만들어 나가는 것은 외모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들이다. 아주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상대와 연애를 하거나 결혼한 후에 상대적으로 평범한 사람과 바람을 피우게 되는 사람들은 전자와의 관계에서 이뤄지지 못하는 그러한 경험을 후자와는 하게 되면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사실 외모는 두 사람의 관계를 유지시키는데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연인과 부부 모두 절대로 항상 관계가 좋을 수는 없으며, 그 관계에 매우 큰 흔들림이 있을 때 상대의 외모에서 이성적인 호감이 느껴지는지 여부는 그 관계를 유지할지 여부를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말 가볍고 얕은 사람이 아니라면 외모의 변화'만'을 이유로 누군가와 이별을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요소들로 인해 관계가 마구 흔들리고 있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외모에서 이성적인 매력이 느껴지는지 여부는 그 사람이 이별로 기울거나 관계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기우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단 것이다.
이 글에서 '외모'의 의미
여기까지 읽으신 분이라면 '결국 외모를 보는 걸 정당화시키려는 시도 아니야?'라던지, '그러면 네 외모는 어떠냐?'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른다. 첫 번째 질문을 하셨다면 그런 의도가 이 글에 일정 부분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내가 말하는 '외모'는 특정한 사람의 이목구비, 즉 잘생겼다거나 예쁘다는 평가가 이뤄지는 요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내가 말하는 외모는 그 사람의 헤어스타일, 표정, 눈빛, 살집이 있는 정도, 옷 입는 스타일 등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서 만들어지는 그 사람의 '느낌'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사회적인 기준으로 잘생기거나 예쁘지만 외모는 별로인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호감이 가거나 매력이 느껴지는 외모가 있지 않나? 내가 말하는 외모란 그런 차원의 외모를 의미한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 설명하자면 그래서 난 소개팅을 할 때 항상 '내가 몸집이 있단 걸 꼭 말해 줘'라고 얘기하고 내 사진을 기꺼이 먼저 넘겨준다. 운동은 좋아하고, 살이 균형적으로 찌는 스타일이다 보니 보통 '덩치가 있다'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기에... 내가 그러하는 것은 그게 공정하다고 생각하고, 어차피 외모로 인해 서로에게 이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할 관계라면 만나지 않는 것이 서로의 시간, 에너지와 돈을 절약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중요하지 않은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나 자신의 그런 상태(?)에 당당한 것은 아니다.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만날 사람에게 매력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도 나는 외모에 대한 관리는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에 사실 이제 조금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된 이후에 내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식사조절을 하면서 운동 강도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난 이성을 만날 때, 그리고 결혼한 이후에도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상대에게 이성적으로 매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흔들릴 때가 있고, 그러하는 과정에서 관계가 어디로 향할지를 결정하는 tipping point는 사실 외모가 될 수도 있기에.
물론 삶에 쫓기고 마음의 여유가 없을 뿐 아니라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한 상황에 대해서 서로 이해해주는 것 또한 나는 연애와 결혼생활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노력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무조건 핑계를 대기보다 한 번쯤은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한 번 정도는 물어볼 필요는 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정말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연인, 그리고 부부관계에서 외모가 제일 중요한 것은 분명히 아니다. 아니 굉장히 덜 중요한 것 중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외모만 보고 관계를 형성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외모는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주는 것도 사실이며, 연인과 부부관계에는 상호 간에 '이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외모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도 안되지 않을까?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은 직장동료를 선택하는 것과는 분명 다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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