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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 혹은 개독/기독교인에 대하여

기독교인의 배우자 기도, 결혼과 이혼

교회에서는 배우자 기도를 많이 강요한다. 그런데 성경에서 가정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고 '여기에서 만나면 좋겠다' 라던지 '교회 다니는 사람을 만나야만 한다'라고 하는게 전부다. 그렇다보니 사람들은 배우자 기도를 조건을 20개 넘게 써놓고 요구하는 등의 이상한 기도를 하고, 때로는 그 기도제목을 다 들어주셨다고 좋아한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그걸 다 들어주신 것일까? 그렇게 요구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항상 들어있는 말이 '이거는 안 들어주셨지만 이런 면에서 내게 더 좋은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그 조건을 요구했기 때문에 들어주신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도제목에 상대를 맞춰서 해석을 한다. 그렇게, 배우자 기도는 왜곡되어 간다.

교회 다니는 사람과 가정을 꾸려야만 할까? 그건 개인에 따라 다르다. 내가 개인적으로 정말 아꼈던 고등학교 후배가 있었다. 몇 년전, 어느날 그 친구 생각이 나서 잘 지내는지 전화를 걸어봤는데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다더라. 축하한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결혼 생각이 없었는데 남자친구가 너무 졸라서 딱 한번 잠자리를 한 후에 아이가 생겨서 결혼했다고 했다. 남자친구는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충격이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그 친구는 불행한걸까?

그 친구가 신앙생활하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아팠다. 혼자 갓난아기를 업고 예배의 자리로 간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찢어지도록 아팠다. 그런데 그 친구를 위해 기도하는 중에, 그 친구에겐 어쩌면 지금 만난 배우자가 그 친구가 하나님 앞에 더 설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그 친구로 인해 그 남편이 하나님을 알게 될 수도 있단 마음이 들었다. 그만큼 하나님 앞에 단단한 친구니까. 그리고 남편은 교회만 안다녔지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한게 기억났다.

한국교회에서는 [가정이 사역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너무 쉽게, 많이 한다. 물론, 내가 전도를 목적으로 누군가와 결혼을 하는 건 말이 안된다. 가정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 다만, 그와 동시에 가정은 우리가 상대와 평생 함께 함으로써 하나님을 더 바라볼 수 있게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사람에 따라서 교회 다니는 사람과 결혼함으로 인해 더 안주하고 하나님을 대충 알고 그 앞에 잘 나가지 않게 되고, 말씀과 기도를 게을리하게 된다면 그건 성경적인 가정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상대가 교회를 다니지 않더라도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면, 그 과정에서 상대가 하나님을 모름으로 인해 본인이 하나님을 더 붙들게 된다면, 그건 성경적인 가정일 것이고,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 상대가 하나님을 만나게 해줄 것이다.

모든 건 개인에 따라 다른 것이지 그 형식에 있어서 맞고 틀림이 있을 수는 없다. '그래도 믿는 사람 만나야지'는 마치 '그래도 동향사람 만나야지'와 다를 바 없는 조건을 보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교회 다니는 사람을 만나서 가정을 꾸렸을 때 하나님을 더 알아가게 되는 성향의 사람도 있고,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과 가정을 꾸렸을 때 하나님을 더 알아가게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건 본인만이, 하나님 앞에서 묻고 들었을 때 알 수 있다.

가정은, 현실적으로는 안식처, 평생 나의 편인 사람과 함께 공동체를 꾸리는 성격을 갖고, 신앙의 영역에서는 상대와 함께 함으로써 상대와 내가 모두 작은예수가 되어갈 수 있는 수단이 되어줘야 한다. 따라서 기독교인의 배우자 기도는, 내가 상대에게, 상대가 내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게 해달라고, 내가 다른 세상적인 조건은 보거나 의식하지 않고 그런 사람을 알아보고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해야 한다. 그 외에 다른 조건은 모두 인간적인 욕심일 뿐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걸 다 만족시켜주실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걸 허락하시는 것과 내가 그걸 요구하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 나라를 함께 만들어 갈 배우자를 위해 기도할 때, 내가 내 욕심과 욕망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를, 더 기뻐하실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혼에 대해서는, 난 개인적으로 두 사람이 정말 하나님 안에서 함께 가정을 꾸렸다면, 둘 중에 한 사람이라도 그랬다면 그 가정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다면, 두 사람을 하나의 가정으로 부르실 때는 그 이유가 있을테니까. 두 사람 간의 갈등이 있을 때 두 사람이 함께, 또 각각 하나님께 더 나가고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에 대한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그 상황을 극복할 지혜와 마음을 주실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다고도 믿는다. 화가 나고 부딪힐 때, 상대를 내가 바꾸려들지 않고 하나님 앞에 먼저 서고, 상대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함께, 믿지 않는다면 혼자서라도 기도하며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을 먼저 붙들면,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주실 것이라 나는 믿는다.

하지만 모든 일에서 그렇듯이,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결혼도, 이혼도 해보지 않았지만 그 덕분에 지인들의 결혼과 이혼 얘기들을 다양하게 들어본 경험을 들어보면, 이혼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더라. 그리고 성경은 인간이 완벽할 수 없음을 전제로 하고, 이혼은 하지 말라고 되어있는 내용도 있지만 이혼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내용도 있다. 한구절, 한구절을 갖고 율법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것이라면 결혼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단 것을 기억하자. 바울은 결혼을 하지 않는게 낫다고 말했으니까.

하나님께서 이혼하는 것을 기뻐하시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고, 함께 맞춰갈만한 사람을 가정으로 부르셨을테니까. 다만, 두 사람이 도저히 감당이 안된다면, 이혼을 한다고 해서 두 사람이 지옥에 가거나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그 또한 이해하실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항상 실수하고 넘어지는 인간이며, 하나님은 그걸 아시고 용서해주시는 분이시니까. 그에 대해 쉽게,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인간은 누구나 한계를 갖고 있다.

이혼한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된다. 이는 이혼하는 과정에서는,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는 상처를 엄청나게 입고 살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혼하게 될 수 있다. 우린 모두 한계를 가지니까. 이혼한 사람들은 사랑하고 품어줘야 할 대상이지 '니가 잘못 살았어!'라고 판단할 대상이 아니다. 가능하면 공동체를 잘 꾸려나갈 수 있게 노력해야하지만, 서로가 갖는 한계로 헤어졌다면, 그 이후에는 그 상처를 보듬어주고 그 사람들아 헤어진 것이 그들이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하나님을 붙드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게, 성경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바울은 왜 가능하면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라고 했을까? 이는 말씀을 읽어보면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이 되어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맥락은 이해하지 않고 그 부분만 잘라서 적용을 하는게 문제다.

바울은 결혼을 하면 현실적으로 챙길 것들이 많고, 하나님 외에 신경 쓸게 많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사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하고 있다. 다만, 가능하다면 그러는게 좋겠지만 인간은 모두 나약하고 넘어지기 때문에 혼자 하나님 앞에 오롯이 서 있을 자신이 없으면 가정을 꾸리라고, 바로 뒤에 설명하고 있다.

가정은,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것은 그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 일이다. 나의 배우자와 아이를 통해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고, 하나님 안에서 예수님을 조금씩, 조금씩 닮아가는 것.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조기교육을 받아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영역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가정을 통해 세상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버틸 수 있게 되는 것. 그게 가정의 핵심일 것이다. 그것 하나로 족하고, 나머지 디테일은 사실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