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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 혹은 개독/기독교인에 대하여

다른 종교를 더 깊게 보지 않는 이유+우리가 살아야 할 방식

다른 종교에 기웃거려 본적은 있지만, 다른 종교를 깊게 알지는 못한다. 이는 천주교 이외에 다른 종교는 학부시절에 기웃거려 보고 몇 번 정도 "왜?"라는 지점에 질문을 던지고 현실과 그들의 교리를 비교하며 논리적으로 비판해보면 헛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 헛점이 보이면 더이상 그 종교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래서 난 다른 종교에 대한 '지식'은 별로 없다. 예선에서 탈락한 종교일수록 이는 더하다.

혹자는 그렇게 종교간에 차이 등에 대해서 얘기하려면 다 공부하고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 소명을 받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난 아니다. 그런 소명을 가진 사람이 아닌 입장에서는 틀렸다고 확신되는, 명확한 헛점이 보이고 이상한 것은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없다. 진리를 깨달아 알기도 짧은 인생은 내가 왜 틀린 것이 왜 틀렸는지를 고민하며 들여다 봐야 한단 말인가? 내가 수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져도 모르겠거나 정답만 나오는 진리의 길을 따라가기도 벅차다.

다른 종교와의 대화를 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물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대화는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내긴 힘들다. 이는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 그것도 대화와 논쟁의 자리에 참여할 정도의 열심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종교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 헛점이 발견되어도 그걸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논리적인 논쟁에는 결론이 나오고 설득될 수 있지만, 믿음의 문제는 설득의 대상이 아니다. 누군가 무엇인가를 믿어버리면, 그건 우리 힘으로 상대를 돌이킬 수 없다. 상대의 그 믿음과 확신이 깨질 때, 상대가 자신의 믿음과 확신을 의심할 때야 비로소 대화가 가능하다.

개인적으로는 기독교에 대해서도 너무 강한 믿음과 확신을 갖지 말고 의심을 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난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다. 이는 그 과정을 거쳐야, 진짜 믿음이 더 견고하고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사람들이 교회에서도 계속 따지고, 묻고, 대들고, 질문해야 하고 목회자들은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그걸 막고, 설명해주고 방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그러라고 있는 고간이라고 생각한다.

격투기 선수들이 링 안에 들어가서 잘 싸울 수 있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 단단하게 말씀과 진리에 대한 논쟁을, 스파링을 엄청나게 치열하게 한 사람만이 세상 속에서 복음을 삶으로 살아낼 수 있다.

우리나라 교회들이 나락의 길을 걷는 것은, 교회가 스파링을 하는 곳이 아니라 요양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절대 순종]이라는 미명하게, 그냥 믿으라고 강요만 하기 때문이다.

명문고 선생님들의 실력은, 뛰어난 사람이 가서 있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아이들을 가르치려다보니, 그들의 질문을 받고 답해줘야 하다보니 스스로 공부하면서 만들어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좋은 목회자는 그냥 툭 나오는게 아니라 평신도들의 질문을 받고,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말씀을 파고 들으면서 만들어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목회자들은 사실 평신도를 통해 단련되어야 하는, 그리고 평신도들을 통해 자신도 깊어져야 하는 사람이지 성도들 위에 군림할 권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최소한 개신교에서는 그렇다.

운동을 해야 체력이 생긴다. 신앙에서 운동은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그래야 신앙의 체력이 길러진다. 또한 체력은 잘 먹어야 길러진다. 신앙에서 음식은 말씀과 기도다.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뤄야, 우리는 하나님을 더 잘 알아가고 믿음이 깊어지며,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힘들다고? 진리를 아는 것이, 내 삶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 지를 알고 싶은 것이 우선순위에 올라가면, 우리는 그것을 할 수 있다.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서 우선순위가 낮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