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애의 풍경

연애의 풍경_서문

돌이켜 보면 난 '이성'이라는 존재에 일찍 눈을 뜬 편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딱 집어서 내가 좋아했던 여자아이의 이름을 지금도 기억할 정도니 말이다. 요즘에야 유치원 때부터 '나 누구 좋아해'라고 하면서 남자친구, 여자친구 얘기를 하지만 최소한 내 기억에는 내가 어렸을 때 그런 분위기가 많지는 않았다. 고학년이 됐을 때는 서서히 그런 분위기가 생겼었는데 주위 사람들과 얘기를 해보면, 당시 나의 이성에 대한 접근 방식이 너무 진지했다. 같은 반에 같은 단지에 좋아하는 친구를 좋아했었는데, 어머니 심부름을 다녀올 때면 항상 그 아이 방에 불이 켜져있는지를 보면서 불이 켜져 있으면 그 친구가 뭘 하고 있을지를 궁금해하고는 했으니까.

그 이후에도 나는 유독 이성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많이 보수적이고 엄격한 집안 분위기에 교회에서 너무 그런 쪽(?)으로 관심을 두지 않아야 할 것처럼 학습되어서 겉으로 티를 내거나, 앞으로는 물론 뒤에서도 항상 움츠러들어있었으니까. 주위 친구들이 성인 잡지나 비디오를 볼 때도 나는 거의 청정지대처럼 그런 것들을 보지 않았으니 말이다. 내가 청소년기에 했던 가장 큰 일탈은 여름에 1면에 꼭 수영복 입은 여자 연예인의 사진이 실리던 스포츠신문을 사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내겐 항상 그 지점이 딜레마였다. 주위에서 조금만 예뻐 보이는, 매력 있어 보이는 여자가 있으면 눈이 가고 설레이고 호기심이 가는데, 그리고 청소년기를 지나가면서 다른 남자아이들과 마찬가지의 마음과 욕구들이 생겨나는데 교회에서는 그에 대한 설명을 누구도 해주지 않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을 하는 게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어떤 친구들은 남자들끼리 이성에 대한 대화를 하면서 '남자들은 다 그래'라고 결론을 냈지만 그런 대화에 끼는 게 불편했던 내 경우에는 '나만 이상하고 내가 나쁘고 더러운 놈인가?'라는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마음에 사랑이란 말을 붙였고, 난 호감이 있는 것,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 그리고 때때로 내 마음 안에 일어나는 느낌 혹은 감정들이 구분이 되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30보다는 40이 가까워진 나이에라도, 지금까지 경험하고 보고 들은 것들을 기반으로 연애에 대한 생각들을 글로 정리해보기로 했다. 어떤 사람들은 연애는 그냥 하는 거고 연애에 대한 책이나 글이 필요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물론 나도 그런 주장에 일부는 동의한다. 사실 나도 연애의 기술, 남자는 이렇다, 여자는 저렇다는 식의 설명을 하는 책들만큼 쓸모없고 종이를 낭비하는 책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연애에 있어서 모든 사람은 다르고, 같은 사람도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고, 같은 사람의 관계에서도 나이와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엄마가, 아빠가 되는 게 처음일 때가 있는 것처럼 누구나 연애에는 처음이 있다. 그래서 누구나 첫 연애는 서툴 수밖에 없고, 그렇게 시작하는 첫 연애는 우리가 의식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그리고 '연애' 또는 '사랑'이라는 표현이 붙는 관계가 형성되는 나이대는 점점 내려가고 있는데, 꼰대가 하는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사춘기 시절에 나 자신을 알고 세상을 안다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나이가 들수록 내가 나를 얼마나 몰랐고 세상을 얼마나 몰랐는지만 깨달아가고 있는 것처럼, 사춘기를 겪는 시점에는 누구나 자신도, 세상도, 사람에 대해서도 잘 모르더라. 그런데 그 시기에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첫 연애를 많이 시작하고, 그 연애는 자신은 물론 상대에게도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우리는 연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고 연애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이들은 '연애 같은 건 나중에 해'라던지, '연애 같이 쓸데없는걸 왜 하냐'라고 말하지만 사람이 왜 사는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현대사회에 가정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연애만큼 중요한 것도 드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럴 생각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인간에게 연애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 누군가는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풀어나갈 얘기들은 연애기술, 연애방법, 상대가 이렇게 할 때 이런 거고 저렇게 할 때 저런 거다라는 식의 글들은 아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그런 류의 글들은 시중에 판매되는 다른 자기계발서 혹은 자기개발서들과 비슷한 부류라고 생각하는데, 그보다는 조금 더 사람은 어떤 존재이며 인간에게 연애는 어떤 의미인지 등과 같은 조금은 더 인문학적인 방식으로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면 그런 글이 무슨 소용이 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이 '쓸모'가 없어서 외면당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말이다. 그런데 사실 세상에 쓸모가 없는 것은 없다. 경영학은 당장 눈앞에서 내가 쓸 수 있는 도구를 손에 쥐어주는 반면 인문학은 내가 들고 만들어야 할 원재료를 쥐어준다는 점에서 쓸모가 다를 뿐이다. 이는 경영학은 깊게, 많이 생각할 필요 없이 당장 써먹을 수 있기에 "쓸모"가 있다고 여겨지는 반면, 인문학은 그 내용을 곱씹고 고민하고, 주위를 관찰하고, 인간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노력을 필요로 하는데 사람들은 "빨리, 빨리"에 익숙해지면서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을 싫어해서 "쓸모"가 없다고 평가받을 뿐이란 것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는 내가 쓸 글들은 어쩌면 다른 연애 관련 글이나 책들과 달리 쓸모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가정들이 무너져 있고,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사람이 너무 적어진 세상에서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연애에 대한 그런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연애에 대한 글이 얼마나 넘쳐나나. 방송에도, 연예인에 대해서도, 명절에도 싱글남녀에 대한, 그리고 꽤나 많은 싱글남녀들의 관심사 또한 연애가 아닌가? 그 정도로 연애에 대한 관심이 많은 세상에선, 누군가 일반적인 "쓸모"는 없지만, 연애에 대해서 정리를 하는 건 필요하단 생각에 [연애의 풍경]을 시작하려고 한다.

============================================

목차

1. 서문_introduction

2. 필요

3. 감정

4. 사랑

5. 시작

6. 경험

7. 이상형

8. 소개팅

9. 대화

10. 데이트

11. 스킨십

12. 교감

13. 신뢰

14. 이별

15. 결혼

16. 가정

17. 부모

18. 나가며

'연애의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애의 풍경_경험  (0) 2019.12.30
연애의 풍경_시작  (0) 2019.12.30
연애의 풍경_사랑  (0) 2019.12.30
연애의 풍경_감정  (0) 2019.12.30
연애의 풍경_필요  (0) 2019.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