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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풍경

연애의 풍경_시작

우리는 언제 연인이 되는가?

어려운 문제다. 두 사람은 언제부터 연인일까? 두 사람이 언제부터 연인인지가 연애에서 가장 어려운 지점 중에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사람마다 연애를 시작할 수 있는 감정, 두 사람이 공유한 경험의 정도에 대해서 다른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정도 감정의 크기면 연애를 하는 건가?'라고 망설이다 인연을 놓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반대로 '이 정도면 연인이지'라는 생각에 섣불리 접근했다가 거절을 당하기도 하지 않나?

이 문제를 조금 더 실용적으로 접근하자면 '우리는 언제부터 다른 이성을 이성의 차원에서 알아가는 것을 그만하고 한 사람에게 집중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두 사람이 연인이 되기 전까지, 소위 말하는 '썸을 타는 기간'에는 두 사람 모두 다른 사람과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어떤 이들은 '어떻게 한 사람 이상의 사람과 썸을 탈 수 있나?'라고 울분을 토할지 모르나, 그에 대해서는 '썸'이라는 것은 엄연히 말하면 두 사람이 아직 서로에 대해 확신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다가오고, 그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 호감이 간다면 그걸 쳐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니냐는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한 사람 이상과 썸을 타는 것에 대해서 비판을 하거나 분노를 표출한다. 어떤 이들은 '그런 상태라면 그 정도 호감을 표출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라고 할 수도 있으나 사실 우리가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해야만 그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아니 물론 일정 수준 이상의 선물을 한다던지, 과도하게 자주 연락을 하고 연인 사이에서나 속삭일 법한 말을 하면서 다른 다리를 걸치고 있었다면 그건 분명 잘못한 행동이고 비판받아 마땅한 행동이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의 호의를 베푼 정도라면 '썸'을 타는 기간에는 사실 그게 문제시될 이유가 없지 않을까? 물론 모든 것은 '어느 정도 수준'의 행동을 했는지에 달려있겠지만 말이다.

왜 '시작점'이 필요한가?

이처럼 '썸'이라는 것도 '연애'라는 것도 그 시작점을 잡기가 힘들고, 모호하다. 감정에 선을 긋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감정에 대해서 선을 그어 놓고 '여기에서부터 사랑' 또는 '여기까지가 썸'이라고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은가? 물론 연애경험이 쌓이고, 두 사람 간의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것에 따라서 '이 정도면 서로에게 집중해도 될 정도로 감정이 있구나'라는 것을 읽어낼 수도 있지만 그 역시도 사실 개인차가 심하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연인이 아닌 사람과도 순간적인 분위기에 따라서 스킨십을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공식적으로 연애를 하기로 한 후에도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손을 잡는 것도 부담스러워하기도 하지 않나?

위 예시는 양극단에 있는 것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그 사이 어디에, 하지만 각자 다른 위치에 있다. 조금 더 현실적인 예를 들자면 나 같은 경우 단 한 번도 남자들만 있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었다 보니 여사친들이 많았고, 여사친들과 편하게 연락을 하는 편이었다. 정말 친하다고 생각하면 저녁 늦은 시간에도 별생각 없이 전화를 하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일정 수준의 호감이 없이는 그렇게 저녁 늦게 전화를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더라.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성장해 온 배경에 따라서 '이성인 친구'와 '이성친구'를 대하고 그들과 의사소통하는 방식이 굉장히 다르다.

연인이라는, 연애라는 시작점은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이는 시작점을 찍는 것이 '우리 이제부터 1일'은 어린 친구들이 소꿉놀이를 하듯이 정하는 것에 불과하거나 '연애 000일'을 계산하기 위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연애 혹은 연인관계의 시작은 두 사람 간의 관계에서 한 번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시작점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예를 들면 난 주위에서 정기적으로 데이트도 하고, 손잡고 거닐고 키스도 해서 당연히 연인관계가 됐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날 '내 연인이야'라면서 다른 이성을 소개하여줬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그 상대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했겠나? 얘기를 듣고 있던 나도 반사적으로 미친 거 아니냐고 거의 소리를 질렀는데 그걸 당하고 있었던 사람의 마음은...

연애를 시작한다는, 연인관계가 되었다는 시작점을 찍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깊게 알아가고, 상대에게 집중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작점을 찍는 것이 꼭 '나랑 사귈래'라는 식의 어색한 고백을 하는 방식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시작점을 찍는 것은 두 사람이 가장 편하고 신뢰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면 되는 것이고 그건 두 사람의 성향, 두 사람이 연락을 주고받는 패턴 등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서로 확인할 수도 있다. 다만, 상대가 '우리 무슨 사이야'라고 묻는 질문을 한다면 '뭘 그런 걸 물어'라고 대답할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해서 만큼은 확실한 답을 줘야 한다. 이는 두 사람 간의 신뢰의 문제기 때문이다.

이처럼 연애의 '시작점'을 찍는 것은 감정으로 내리는 결정이 아니라 이성으로 서로에게 하는 약속이자 결단이다. 그리고 그 시작점을 찍은 이상 그 약속은 두 사람 사이에서 지켜져야 할 것이다.

'시작점'을 찍는 시기

그렇다면 그 시작점은 언제 찍어야 할까? 그에 대해서 역시 누구도 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결혼하기 전까지 두 사람의 연애기간만큼이나 연인이 되기 전까지 두 사람이 알아가는 기간도 천차만별이라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어떤 사람들은 소개팅을 받고 처음 만난 날 밤을 넘겨 다음 날에 함께 깨어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데이트를 10번 넘게 하고도 여전히 서로를 알아가기만 하기도 하지 않나? 그에 대해서는 정답이 있을 수도 없고, 누구도 어떤 것을 강요할 수는 없다. 이는 사람은 모두 다르고, 같은 사람도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다른 사람의 모습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작점을 찍는 것은 서로에게 집중하기로 하는 '약속'이기 때문에 '이제 우리 연애하니까 이 정도는 같이 할 수 있잖아'라는 말 역시 성립하지는 않는다. 이는 연애 혹은 연인이라는 틀에 들어가기로 한 것은 서로를 '알아가기로' 한 것일 뿐, 특정한 행위를 하겠다고 약속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연애를 시작한 이후에 연인 간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감정과 신뢰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발전할 것이지 강요를 통해서 성취 혹은 달성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이는 연애를 하거나 연인이 되었다는 것이 특정한 행위나 조치를 보장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이 아니란 것을 의미한다.

이는 상대를 계속해서 알아가고 싶고, 상대에게 집중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아직 감정이 연애를 할 정도로 크지 않은 것 같아'라는 이유로 그 시작점을 찍지 않고 미룰 필요도 없단 것을 의미한다. 아 물론 만약 다른 사람과도 썸이 있어서 누구에게 집중하고 싶은 지에 대한 확신이 없을 경우에는 굳이 그 시작점을 찍을 필요는 없을 테지만... '아직 확신이 없어'라는 것을 이유로 계속 그 시작점 찍는 것을 미룬다면 상대가 그 과정에 지쳐서, 또는 당신이 상대에게 호감이 없다고 생각해서 상대가 떠날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에 대해서 상대를 비판해서도 안된다. 당신이 표현하지 않는다면 상대가 당신 마음을 어떻게 알아준단 말인가? 그리고 그 확신이란 것은 결혼하는 사람들도 서로에게 100% 갖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니 그런 확신이 있었던 것이 결혼 후에 깨지는 것이 보통의 부부의 모습이다. 따라서 일정 수준 이상의 감정이 있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고 싶단 생각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확신이 없다는 이유로 그 결정을 미루는 것은 인연을 놓치기가 딱 좋은 행동이다.

남자와 여자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렇게 연인관계에서 시작점을 찍는 과정에서 여자들이 망설이고, 남자들은 단순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난 보통 그런 상황을 '여자들이 남자보다 생각이 빠르고 경우의 수를 잘 계산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설명하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 남자들은 대부분 의사결정을 단순하게 한다. 몇 가지 중요 요소를 따져보고 '그래? 그럼 이렇게 하자'라고 말이다. 이는 남녀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다고, 여자들은 남자들은 너무 단순하다고 혀를 차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예외도 있으나 남녀가 평균적으로 봤을 때 그런 경향성이 있단 것이다.

그래서 남녀관계에서 시작점을 찍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남자가 여자에게 신뢰를 주는 데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신뢰라는 것은 반복적으로 고백하고 선물을 줌으로써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생각보다 많은 남자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 신뢰는 작고 디테일한 지점에서부터 형성된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말 한마디, 문자 하나, 연락 한 번에서 상대가 호감이 있다는 싸인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축적되었을 때야 비로소 그 시작점을 찍을 수 있는 신뢰가 쌓이게 되고, 그렇게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는 것은 연애 과정에서도 계속되어야 한다.

이런 경향성은 좋고 나쁨이 아니라 다름에 불과하고 (이 글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경향성으로 설명했지만 사실 남자들 중에서 정말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도 있고, 여자들 중에서도 단순한 사람들도 있다), 두 사람이 마음과 귀가 열려있다면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상대의 그러한 '다름'에 대해서 비판을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연애 혹은 연인으로서의 시작점을 찍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두 사람 간의 기본적인 신뢰관계라는데 있다. 그리고 시작점을 찍는데 필요한 신뢰관계의 수준은 개인마다 편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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