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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말씀 묵상-2020년

요한일서 1-5장 묵상

Whoever claims to live in him must walk as Jesus did. (요한일서 2장 6절)

작은 예수가 되는 것. 예수님의 삶을 알고, 예수님께서 살아가신 삶을 알고 그 발걸음을 따라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이다. 그래야 기독교인의 삶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교회에는 기독교인은 얼마나 될까? 안타깝지만 아주 많아 보이진 않는다. 적어도 요란하게 문제가 되는 자들은 진짜 기독교인은 아님을 본인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고 잇다. 

Do not love the world or anything in the world. If anyone loves the world, the love of the Father is not in him. (요한일서 2장 15절)

그들이 기독교인이 아님을,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을 따르려는 자가 아님을 보여주는 건 그들이 문제가 되는 건 대부분 세상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무리하게 이루려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따르려는 자는 세상의 가치를 쫓아 살지 않는다. 세상이 강조하는 욕구, 욕망 등을 세상보다 더 심하게 추구하는 자들은 절대로 성경에서 말하는 기독교인일 수 없다. 

No one who lives in him keeps on sinning. No one who continues to sin has either seen him or known him. (요한일서 3장 6절)

성경에서 말하는 sin은 창조의 원리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세상의 가치를 쫓는 것은 창조의 원리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반복해서 죄를 짓는 자들은 절대 성경에서 말하는 기독교인, 예수님을 따르는 자일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This is how we know what love is: Jesus Christ laid down his life for us. And we ought to lay down our lives for our brothers. (요한일서 3장 16절)

누군가가 거듭났다는 것,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은 그의 삶을 통해서 드러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안에서 거듭난 자라 할 수 있다.

원수도 사랑하라는 성경의 말씀은 비유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추구해야 하는 삶의 방향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대부분 사람들은 묻는다. 그런데 우리의 원수된 자들도 그가 살아온 삶을 들여다보면, 용납하긴 쉽지 않아도 이해는 되는 면들을 대부분 갖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원수된 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육신, 현실의 것들을 파괴한 자들이다. 세상의 것에서 자유롭다면, 세상, 현실, 육신의 것에서도 자유로울 것이고, 따라서 우리의 세상의 원수라고 해서 용서하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물론, 그게 우리 힘으로 될 수는 없다. 우린 이미 기본적으로 창조의 원리에서 벗어나 있는 자들이기에. 다만,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허락하시길 구해야 한단 것이다. 그게, 성경이 말하는 사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