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독 혹은 개독/기독교인에 대하여

기독교인의 회개에 대하여

'정인이 부모도 회개하면 천국 가나요?'란 자극적인 내용이 어느 기사 제목에 있는 것을 봤다. 가슴이 갑갑해졌다. 기독교의 '회개'가 천박한 낚시용 기사제목에 등장하는 것이. 그런데 그 기자를 탓할 수는 없었다. 그 천박함은 사실 기독교인들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회개하면 천국에 간다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죄를 잊으신다고. 교회는 그렇게 쉽게, 쉽게 말해왔다. 그런데 그에 대한 반문에 대해서는 누구도 제대로 답을 해주지 않았다.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도 회개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아무 잘못이 없는 것이냐는 질문에.

누구도 그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두 가지 중 하나 때문일 것이다. 첫 번째는 그걸 설명한다고 해서 상대가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거나, 두 번째는 본인이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도 없이 맹목적으로 믿어서 그에 대한 설명을 하지 못하겠거나.

두 번째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절대로 목회자로서의 자격은 없다고 생각하고, 평신도들의 경우에도 그런 생각에서 한 걸음 더 나가서 고민하면서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의 경우는, 개인적으로 목회자들 뿐 아니라 많은 전문가들이 하는, 오만함에서 비롯된 실수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라면, 자신의 전문영역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핵심만 짚어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어느 수준인지를 고려해서 눈높이에 맞춘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데,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은 자신이 하는 것에 매몰되어서 그런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그런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기술과 능력을 익히는데 관심이 없다.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9할 이상은 그런 것 같다. 이는 목회자들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많은 개념들은 현실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상정하는 경우들이 많다. 이걸 위험할 정도로 단순화시켜서 설명하면 [마음]의 문제인 경우가 많단 것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나오는 율법 중에는 그 행위 자체보다도 그 행위를 함으로써 우리 안에 생기는 습관과 그 습관으로 인해 우리 마음이, 중심이, 욕구와 욕망의 방향이 향하는 방향이 더 중요한 것이 많다. 그리고 그건 사실 우리가 어떤 상태이냐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작용하게 된다.

에를 들어보자. 우리는 보통 성경 말씀을 읽고 싶지 않다. 힘들고, 어렵고, 때로는 수천년전 얘기가 현실과 무슨 상관이 있나 싶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반복적으로 읽다보면, 율법적으로, 습관적으로라도 읽다보면 그 내용이 맥락과 흐름적으로 읽어지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며, 그런 이해가 생기기 시작하면 세상을 보는 시선도 달라지게 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서 모진풍파를 겪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나서 말씀을 읽는 순간 푹! 빠지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해서 정말 말씀이 달고 달아서 계속 읽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두 사람은 겉으로 봤을 때는 똑같이 성경을 읽고 있지만, 겉으로 봤을 때는 완전히 같은 행위를 하고 있지만 그들은 또 다른 한편으로는 완전히 다른 과정을 걷고 있다. 그들의 행위는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행위의 [다름]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과 생각, 즉, 그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회개 역시 마찬가지다. 입으로는 회개한다고 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전혀 그런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그런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회개한다고 말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회개하고 있지는 않은]상태에 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 회개에서 말하는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잊으신다'는 내용의 회개가 아니다. 이는 그 말을 하는 것이 그의 내면과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신이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안하다는 말도 차마 입 밖으로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는,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 앞으로 나와서 회개해. 내가 다 잊어줄께]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네가 아무리 잘못했다고 생각해도 나는 다 용서해준다고 말씀하고 있으신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변화가 일어난다. 첫 번째로 죄책감이 어느 정도 줄어들고, 두 번째로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그 사람은 자신이 잘못한 사람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하고 표현하게 되고, 세 번째로 다시는 그 행동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자신이 극악무도하다고 생각하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 행동을 누군가(하나님)가 용서해줬다는 사실은 그 사람이 다시는 실수하지 않도록 노력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회개의 첫 번째 단계는 사실 [내가 잘못했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게 전제되지 않은 입으로만 하는 회개는 사실 내면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이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 하는 이기심의 발현일 경우가 많다. 그러한 회개는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회개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건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사회적인 회개일 뿐이다.

두 번째 단계는 그런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갖고 나오는 것이다. 빠짐없이, 솔직하게. 자신이 잘못한 것을 인정하면서.

그렇게 한 사람은 사실 행동이 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완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본인이 그에 대한 처벌을 기꺼이 받겠다고 하는 것이 정상이다. 본인이 잘못은 했지만 처벌은 받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한 잘못의 경중을 모를 때야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회개한 사람은, 행동이 바뀔 수밖에 없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 사람에 대한 우리의 행동이 바뀌지 않나? 이는 인간의 내면이 영향을 받으면 행동도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회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면, 우리의 행동은 바뀌지 않을 수 없다.

한국교회 중 적지 않은 교회들은 싸구려 구원. 싸구려 복음을 팔아서 장사를 해왔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교회들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목회자들이 자신의 생계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삼은 사업체가 되었다.

거기에 한 가지가 더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교회는 싸구려 회개를 팔아왔고, 싸구려 회개를 통해서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를 하지 않은 이들에게 면죄부를 팔아왔다. 오늘날 적지 않은 교회들이 개신교가 구교에서 분리될 때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타락한 모습을 보이는 중심에는 교회로 불리는 사업체들이 싸구려 회개를 팔아온 역사가 있다.

정인의 양모는 살인의 고의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건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를 했다면, 그런 마음이 있다면 할 수 없는 말이다. 그건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