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자세히 설명해 봐
이젠 소개팅을 주선할 만큼 괜찮은 싱글들이 주위에 남아있지 않지만, 소개팅을 한창 많이 주선할 때 나의 첫 질문은 항상 똑같았다. '이상형을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 봐' 이 말에는 보통 두 가지 반응이 나온다. 첫 번째 부류는 '정말요?'라면서 당황하는 부류이고 두 번째 부류는 '자세히 설명할게 뭐 있나요?'라고 답하는 부류다. 첫 번째 부류는, 본인들은 되게 분명한 이상형은 그려놨지만 본인이 스스로 얘기하기가 민망해서 말한 적이 없거나 말했다가 '그래서 니가 싱글인 거야'라고 핀잔을 들은 경험이 있는 경우다. 두 번째 부류는 이상형이라는 것 자체를 크게 고민해 본 적이 없는 경우로, 대부분은 '예쁜 여자/잘생기고 키 큰 남자' 또는 '착한 사람'처럼 누구나 의례 할 수 있는 대답을 한다. 이상형에 대해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는 경우, 왜 그랬는지에 대한 이유는 천차만별이다.
내가 이 질문을 한 이후에 거의 고정으로 하는 얘기도 정해져 있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다'라는 것. 그렇다면 난 왜 이상형을 최대한 자세하게 말해보라고 했을까? 그건 사실 사람들이 말하는 이상형이 본인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상대에게 이상형을 물어보는 것은 사실 '네가 생각하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봐'라는 질문을 돌려서 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이상형이라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답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은 사람인 경우가 많고, 이상형을 자세히 설명하는 경우는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자신과 어떤 사람이 맞을 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사람들이고, 두 번째는 그런 고민 없이 그저 좋다고 생각되는 조건은 다 나열하는 부류다.
사실 그 질문을 함으로 인해 상대가 위 세 부류 중에 어디에 속하는 지를 파악하는 것 자체도 누구를 소개하여줄지를 검토할 때 큰 도움이 된다. 생각 없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생각이 많지 않은 사람을 소개시켜줘야 하고, 자신에 대한 고민 없이 좋은 조건은 다 나열하는 사람은 신동엽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연애에 있어서는 '애'인 사람을 소개시켜줘야 하는 반면 생각을 많이 해본 사람은 '어른'이면서 그 성향에 맞는 사람을 시켜줘야 한다.
이상형의 의미
그렇다. 사실 이상형을 말한다는 것은 이렇듯 자신에 대해서 많은 것을 드러낸다. 이상형의 조건뿐 아니라 이상형에 대한 것을 말하는 순서에서도 드러나는데, 이는 이상형을 말할 때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먼저 말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여러 가지 조건을 나열하는 과정에서 외모를 먼저 말하고 상대의 학력, 종교를 말하는 사람과 상대의 종교, 학력 이후에 외모 얘기를 하는 사람은 같은 조건을 얘기했어도 중요시하는 지점이 다르기 때문에 실제로 선호할 스타일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는 누구나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뒤에 말한 조건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앞의 조건들이 정말 잘 맞는다면 사람들은 뒤에 말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기준을 낮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누군가가 내게 이상형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그건 아마 '대화가 잘 통하고 같이 있을 때 편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고 그건 내 종교적인 성향을 받아들이거나 좋게 봐줄 수 있어야 하고, 상대가 생각이 많을 필요는 없지만 내 생각을 들어주는걸 불편해하지 않고 그 얘기들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성의 외모를 전혀 의식하지 않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난 양심이 있으면 거울을 보라는 얘기를 들으면 '거울을 볼 수록 최소한 나보다는 더 외적으로 탁월한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로 반박을 할 정도로 '내 기준으로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하지만 만약 다른 게 정말 잘 맞고 통한다면 그 기준은 분명히 많이 낮아질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이러한 설명은 내겐 종교가 가장 중요하고, 관계에서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나의 성향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이상형을 말할 때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성향을 말하게 되어 있다. '이상형'이라 함은 내가 가장 이상적인 짝꿍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 조건 등을 의미하기에. 그리고 자신에게 가장 이상적인 것은 결국 자신의 모습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살 수 있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상형에 대한 설명은 상대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 자신에 대한 설명에 가깝다.
안타까운 현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에서 '이상형을 말해 봐'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외모를 말한다는 것이다. 이는 첫 번째로 사람들이 대부분 스스로에 대해서도, 연애와 결혼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모를 가장 먼저 말하거나 외모만 말한다는 사실만으로 그런 결론을 내리는 것은 사실 외모는 가장 먼저 우리가 접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외모는 우리가 만나는 순간 즉각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조건을 가장 먼저 말을 한다는 것은 일단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중심으로 상대에 대한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리고 최소한 연애에 대해서는 그것으로 인해 다른 것들이 필터링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과정에서는 사실 외모는 조금 덜해도 다른 면들이 정말 잘 통하는 사람들이 필터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뜻하기에 사실 외모는 소위 말하는 '예선 통과를 위한 기준' 정도의 조건으로 삼는 것이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의 외모는 결국 변하게 되어 있기에.
외모를 말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 결혼을 생각할 나이의 사람들 중 상당수는 상대의 학력, 연봉, 자가 소유 여부, 집안 등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한다. 이상형. 과연 그것으로 두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을 다 가지고 다른 점도 그 조건을 맞추는 수준으로 맞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최소한 결혼을 하기에는 힘들 것이 분명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런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인기 때문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잘 오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당신이 어떻게 상상하든지 간에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설사 존재한다 해도 그런 사람은 당신을 만날 때까지 싱글일 확률일 가능성이 매우 낮기에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해야 할 확률은 99%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형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사실 내 자신을 알기 위해서 아무리 고민을 해도 우리 자신을 파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는 사실 우리가 다른 무엇인가와 관계를 형성할 때야 비로소 드러나지 않나? 사실 사람들이 1년은 사귀면서 4계절을 겪어봐야 한다는 것도 사실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인이 상대와 맞는 사람인지를 돌아보기 위함이기도 할 것이다.